홋카이도의 푸르름을 만끽하고 왔습니다   -   기행문 [紀行文]

홋카이도는 6월이 가장 여행하기 알맞은 때라던가요.
딸아이의 휴가가 앞당겨져 갑자기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우선 비행기예약을 한 다음 날짜와 값에 맞춰 호텔을 잡자니 그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더군요. 마땅한게 있으면 빈방이 없고, 역에서 가까운 호텔은 값이 턱없이 비싸고....
아무튼 인터넷과 눈싸움 하며 오밤중까지 뒤진 끝에 겨우 찾아내어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습니다.

삿포로는 싱그러웠습니다. 하늘 푸르고 공기 맑고 햇볕은 따사로와 내딛는 발걸음도
경쾌합니다.
분명 안내문에는 걸어서 15분 거리라는 호텔이 걸어도 걸어도 나오지를 않습니다.
족히 15분은 걸음직한데 중간쯤으로 짐작되는 오도리공원이 나오는 데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지도를 거꾸로 보고 옆으로 보아도 감을 잡을 수 없어 할수없이 길가의 빈택시 기사에게
물었더니 한참 더 가야 한다며 차를 타면 데려다준다나요. 택시 탈거면 역앞에서 탔지,
오기로라도 걸어가자 맘먹고 또다시 물어물어 걷기를 10여분, 딸이니망정이지 남편이었다면
길가에서 싸움났을거에요.
호텔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큰대자로 벌렁 들어누었습니다. 

오후의 오도리공원은 제법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잔디에 누워 햇볕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면서 우린 그늘진 벤치에 앉아 그 고장 명물인
구운 옥수수와 감자를 먹습니다. 같은 감자라도 재배하는 곳에 따라 맛이 이렇게 다르구나
감탄하면서요. 서울보다 훨씬 북쪽인 탓일까 아직 튜립이 피어있었고,
겹벗꽃처럼 보이는 게 바람에 흣날리더군요.

호텔에 유카타(浴衣) 대신 사무에(作務衣)라는, 절에서 일하는 사람이 입는것처럼 생긴
아래위 떨어진 옷이 비치되어있는 게 신기했습니다. 하긴 대도시 한복판 호텔에서
유카타 입고 길건너 별관에 온천하러 가긴 좀 그렇지요.
밤에는 호텔 대욕탕에서 피로를 풀고, 다음날 아침 일찍 그 옷차림으로 별관 대욕탕
노천온천을 즐겼는데, 맥반석수라나 뭐라나 아무튼 목욕 좋아하는 우린 신이 났더랬습니다.

하코다테행 특급기차로 도야역까지 2시간, 거기서 버스를 갈아타고 20분쯤 달려
토야호 온천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전에 왔던 곳의 반대편인 듯,
수천만원 한다는 박제곰 3마리는 보이지 않고, 호숫가를 따라 맘모스호텔이 즐비하게
늘어서있었습니다.

호텔을 찾아가는 도중에 예쁜 레스토랑이 눈에 띄어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습니다.
햄버그스테이크를 시켰는데 맛이 일류호텔 식당 저리가라입니다.
그 촌구석에서도 그들은 제대로 맛과 분위기를 낼줄 알더군요.  

7층 호텔방은 호수 전체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그야말로 전망 좋은 다다미방이었습니다.
밖을 내다 보고 있노라니 호숫가 산책로를 걷던 중년 아줌마들이 올려다보고 손을
흔들더군요.
뚜- 하는 소리와 함께 유람선이 움직이는데 바람이 센지 호수가 많이 일렁입니다.
양산과 모자를 들고 우리도 산책에 나섰지요.
홋카이도의 후지산이라는 요테이산(羊蹄山)이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채 까마득한 저편에
뚜렷하게 보입니다. 모습을 잘 들어내지 않는 산이라더니, 우리는 운이 좋았나봅니다.

일에서 해방되어서인가 딸아이는 연방 깔깔대고 이야기도 많습니다. 회사 이야기
동료 이야기 출장 이야기...드라마 영화 연예인 하다못해 초등학교때 추억까지 쏟아냅니다.
산책로에는 군데군데 조각이 놓여있었는데, 43킬로 호수 둘레에 58개를 설치하여
자연과의 친화를 도모하는 야외조각공원을 조성하였다네요.
스태미너만 받쳐준다면 4분의 1이라도 돌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가 지자 호숫가에 불빛 찬란한 유람선이 떴습니다.
분명 저 배를 타고 불꽃놀이 구경하겠지, 하면서 딸아이는 들뜨기 시작입니다.
9시부터 시작하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우린 8시30분에 일착으로 승선,
일등석을 골라 앉았습니다.
시간이 가까와지자 서서히 배는 호수 가운데로 흘러나갑니다.
정각 9시에 탁! 하고 첫발이 하늘로 솓구쳐 올랐습니다. 황홀하다는 말 이때 쓰지 않으면
언제 쓰겠습니까? 디카를 준비하고 하늘을 응시하는데 도무지 타이밍을 맞출 수 없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탁 소리날때마다 보지도 않고 셔터 누르며 입으로는 환성을 지릅니다.
정말 살아서 이런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걸 하느님께 감사하고 싶어지더군요.
호텔로 돌아와 확인해보니 기가막혀, 거의 모두가 깜깜하늘이고 웃기지도 않는 거
겨우 한장 건졌습니다. 아무래도 디카 잘 찍는 법 배워야할것 같습니다.

삿포로로 돌아와 시내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지도를 보고 고른 곳이 나카노시마(中之島)공원, 우린 시내전차를 탔습니다.
‘애게, 전차가 요렇게 작아?’ 딸아이의 첫마디입니다. 추억속의 전차는 이보다
훨씬 큰데, 양편 좌석 앞에 선사람끼리 엉덩이가 닿을 지경입니다.
그런 전차를 타고 통학 하던 시절이 얼마나 그리웁던지....

공원 안에 세워진 札幌콘서트홀에서 그날 저녁에 연주회가 있는 모양입니다.
외국인들이 더러 눈에 띄고, 홀 안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입니다.
다섯시반쯤이었는데 레스토랑에는 저녁식사하는 손님이 그득했습니다.
우린 2인용 테이블에 마주앉아 커피와 케익을 주문했습니다.
넓은 홀을 향해 앉은 딸아이가 사방을 둘러보더니 하는 말.
‘엄마, 역시 이나라는 우리보다 문화수준이 높은 것 같애. 영 분위기 안나는
중년 커플이 샴페인 곁들인 양식을 드네. 게다가 어떻게 이렇게 조용할 수 있어? ’

 

스스키노는 우리의 명동이라고나 할까? 밤거리가 요란합니다.
요상한 젊은이들이 무리지어 서있고, 전단지 내미는 남녀 모두 처다보기조차 겁납니다.
딸아이가 저녁은 꼭 초밥을 먹고 싶다고 해서 그 일대를 기웃거리는데,
낯선 곳에서 적당한 음식점 찾는 일 여간 어렵지 않더군요.
건물 아래층에 있는 작으마한 스시전문점에서 딸아이의 원을 풀어주었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아침에 커피샵에서 모닝서비스 먹는 일입니다.
그자리에서 갈아 끓여주는 커피에 상큼한 샐러드 약간, 그리고 두툼한 토스트...
가게와 값에 따라 삶은 계란이나 쥬스가 곁들여지는데 어느집이건 빵맛은 한결같이
맛있습니다.
길모퉁이 화분이 두어개 놓인 조그만 찻집에서 나는 알맞게 구워진 빵에
버터를 듬뿍 발라 먹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번 여행에서는 먹고 싶었던 것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먹었다며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앞으로 몇번이나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