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의 스포츠애호가 : 이시하라신타로(石原愼太郞)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 拝啓 息子たちへ - 부친이 4명의 자식에게 쓴 인생의 편지 중에서 >
동생인 유지로(裕次郞)가 그처럼 절묘한 반사 신경을 갖고, 완건(頑健)한 육체를 가졌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조사(早死)한 것은 바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틈나는 대로 손쉬운 스포츠를 하고, 전신의 땀을 흐르게 한다는 습관을 계속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 때 유지로에 비해 병약했던 자신의 과거를 비교 생각하면서, 확신하고 있다.
나는 인간의 건강에 대해 아마추어일 뿐이지만, 적어도 사흘에 한번은 뭔가로 전신에 땀을 흘린다는 일이 인간의 몸을 양성에서 음성으로 바꿔, 건강을 보증하는 기술이 되는 게 아닐는지.
건강을 잃은 인생처럼 괴로운 건 없다. 우화(寓話)시인인 하게도른은 ‘그저 건강한 것만이 인생인 것이다.’ 라고 단언하고 있다. 무샤노코지사네아쯔(武者小路実篤;소설가)도 ‘인생에 있어 건강은 목적이 아니다. 하지만 최초의 조건인 것이다.’ 라고 말한다.
단 하나의 동생 유우지로를 52세의 젊음으로 잃고 나니까, 옛날 사람이 말하던 “죽어서 꽃 열매가 피는가.” 라는 말도 통절(痛切)하게 이해된다. 건강을 자신의 육체를 혹사하면서까지 지닌다는 건 인간이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 남자가 남자로서 산다는 것의 최저 필요조건임에는 틀림없다.
땀을 흘린다는 육체적인 행위, 다시 말해 스포츠는 그러한 의미로, 인간의 일생을 통해 빼놓을 수 없는 살기 위한 기술이라고 생각하면서, 다행이 우리 집의 습관과 전통은 그러한 확신을 너희들에게도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너희들이 새로운 부친이 되어 집안을 꾸렸을 때, 그런 전통을 너희들 집에 확실하게 전달하기 바란다.
시간이 없을 때 나는 곧잘 도쿄(東京)의 집을 나와서 다마가와(多摩川)에 내려가, 그 강변의 자이언트 연습장을 따라 상류까지 조깅을 한다. 거리는 대략 5킬로 정도인데, 하지만 5킬로라 짧은듯해도 상당히 길다. 때때로 너희들의 누군가가 나의 조깅을 따라서 해주지만, 너희들에게 있어서는 부족한 거리인지 모른다. 그래도 언젠가 히로타카(宏高)가 함께 뛰면서, 새삼 느낀 듯,
“역시 아버지 연대로는 이만큼의 페이스가 좋아. 그것이 중요하거든.” 하고 딱하게 여기면서 격려해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장남의 말에 따르면, 요즈음 사회인이 되어 상당히 기력이 약해져 있어 반은 아부인지 모르되. 뛰면서,
“아버지 연대로 이만큼 터프한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라는 등으로 위로도 해주지만, 나로서는 그것을 들으면서 역으로 그의 육체를 염려하는 것도, 청개구리라 할까 바보부모인지도 모른다.
나도 요즘은 테니스를 너무 해서 어깨에 상처를 입어 서브가 불안하다던가, 전에 상처 입은 허리가 또 악화되어 골프를 중지하거나, 이른바 2중고(重苦), 3중고로 겨우 땀을 흘리려 하고, 결국 되돌아가는 걸 런닝을 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하지만 달린다는 건 모든 스포츠의 원형이고, 어떤 의미로는 인생의 원형(原形)인 듯한 느낌이 내겐 어쩔 수 없이 든다.
예로부터 뭔가 기분 언짢게 하는 일이 있으면, 다른 스포츠를 하지 않고, 즈시(逗子)의 집에서도 도쿄의 집에서도, 그저 길을 선택해서 혼자 묵묵히 달려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묘한 일로, 앞을 직시하면서 그저 몸이 계속되는 한 달린다는 행위 중에서, 그러한 노력, 어떤 의미로는 도로(徒勞)에 가까운 노력이, 자기가 지금 맛보고 있는 인생의 본의가 아니라는 걸 일시적 차질로서 소거(消去)해준다. 하고 있는 가운데. 자기가 이렇게 달리는 한 자기는 일생 달려가는 것이라는 자각이 되살아나서, 자신이 스스로를 위로하고 되살릴 수가 있다.
너희들은 부모의 눈으로 봐도 각각의 분야에서 나보다 뛰어난 스포츠맨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체험 가운데, 각각 다룬 분야에서 나름대로 터득한 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건 책에 쓰여 있거나 쓰여 있지 않거나 할 것이되, 하지만 그래도 너희들의 혈육으로 바뀐 체험이고, 그것이 그대로 백퍼센트 가깝게 전달되어 얻는 상대는 필경 자신의 아이들밖에 없다.
나는 결코 일류의 스포츠맨은 아니지만, 그러나 초일류의 스포츠애호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기에서도 일류가 되려고 마음먹고, 자기 나름대로 체득(體得)한 스포츠의 요령을, 유형무형으로 메모해왔던 것이다. 그것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도 바보 부친의 하나인지 모른다.
언젠가 히로다카(宏高)가 고교 체육회의 테니스부에 있었을 때다. 내가 속해 있는 컨트리클럽의 테니스코트에서 가족과 친구들과 테니스를 치고 있을 때, 히로다카의 서투른 서브에 대해 너무나도 안타까워 옆에 비어있는 코트의 한구석에서 특별훈련을 시킨 적이 있다. 히로타카는 꽤나 마음 내키지 않은 듯 했으나, 난 불문곡직하고 그를 납치해, 그곳에서 반시간 정도 특훈을 시켰다. 울타리 구석에 의자를 놓고, 거리를 재어, 그곳을 향해 볼을 치는 내 나름의 연습을 시켰는데, 내 눈으로 봐도 그는 그것을 단시간에 터득했다.
얼마 후에, 그가 고교생들의 텔레비전 프로에 나왔을 때, 깜빡 그 이야기를 해서 다른 친구들로부터 부러워하는 걸 눈으로 보면서, 부친으로서의 기쁨을 맛봤던 것이다. 아이는 역시 알 수 있는 곳에서는 알아주는 것이구나 하는, 일종의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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