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日月が沈む時 - 許世旭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ほととぎすが血を吐くようにもの悲しく鳴いてた晩春の暮れ時と記憶される。 山と山が薄ら寒そうに腰を擦りつつ互いに長い股を捻じって横になっている山奥なので, 陽がくれると直に暗くなり、松風がもたらす薄い寒気で障子を閉めねばならなかった.
40里外の邑內へ行って帰ってこないお父さんを迎えに私は三つ年下の弟を連れて峠を越えた.しばらく歩いていると眉毛のようだった三日月が沈み、何処を見ても黒い闇が寄せて来るので、十五六の少年は突然泣き出しそうな怖さで震えていた. 私は弟の手をきゅっと握ってとぼとぼと歩き出した. 拳大きさの石英を拾った. それを汗が出るほど握って、弟に附いて来いと言った.
普段のように牛粥の匂いが漂う下男の背中を先立たせ、その後ろにぴったり附いてお父さんを迎えに行った夜は、それなりに頼もしくて面白かったが, その夜のように若草のよな兄弟二人だけで出迎えるときはただ震えるばかりだった. ありありと覚えているのは、私より幼い弟がずっと平然として鷹揚だったのだ. 恐れを成していると腹も減った. どんどん大きく聞こえてくるみみずくの音, お父さんのほっそりした体躯に飄々とした(トゥルマギ(外套のような着物)がなかなか見えない時, 我等は泣き出すしかなかった。その頃、わが家の前を通りすぎる新作路には、一日に置いてやっと山坂へ行き来するトラック数台と黄色く牛屎で染み付いた牡牛の荷車のみきいきい音を出すのみだった。二十里の外には汽車が通じたが、たったの2、3回, それも真っ黒の貨車でずっと後ろに繋がれた臨時列車まで取り入れてそうだとのことだ。.
元々素朴だったお父さんは、邑內へ用事がある時度に40里もする遠い道を初めから歩くことに決めていた. なので早く暁に出掛け、決まって黄昏が過ぎて帰って来た. ひどい場合は百里を越える全州旅行も步行を拒まなかった. だからだろうか、私がやっと十歳を過ぎた後から始めた迎えがある程度慣れたのだ。 外地へ出て中学へ通う頃、夏・冬休みを迎え家に帰る時私はこの迎えのような仕事で學資を無心する不計数の借金を返そうとした. 確実にそのような禮遇があった後には本代を下さる時寛大だった. 尚、たくましい下僕を前に立たせ、行灯で道を照らしつつ鬼の話など聴きながら明るくしつつぞくぞくする夜道を歩く時にはしびれるような面白さも少し感じたりしたものだ。
その夜もそおのようなそのような下心が数個あったかも知れない. それで尚目的のためにもお父さんを迎えねばならぬと堅く誓ったものだ。 ほどなく遠くにばたつく白い着物を見付けては、普段一度も甘えたこと無く育ったにもかかわらず大きな声で「父さん」と叫んだ. そしてわが兄弟は長身の父の後ろに附いてちょろちょろと帰った. 他の父親のように両腕で兄弟を抱えて、飴でも一つ懐から出してくれたらなあと思ったものだが、厳しかっただけの父親が今は特に恋しい. 陶淵明が落鄕する時門前で迎えた彼の稚子より私達はもっと愚かだったので遠い道を胸轟かせていたかも知れない.
息子の我等が遠行からの父親を迎えた所は遠い峠を越えて石等が山を成した城隍峠であり、絹のような水が光る淸江水の飛び石であり、息が弾む高い碑石峠だった。今日の如く便利に門前で迎送するのは事務的で嫌だ。通行禁止五分前に家へ帰る蕩父とか、浪兒ではなくともベルの音を聴いてからスリッパを引きつつ子犬と共に門を開けてくれる、そんなことはもっと嫌だ. 今は分秒を争う約束にお互い縛られてまっしぐらに走る精密機械時代だ. 一昔わが父租等が愛する友等と再会を約束する時は、「花でも咲いたら逢おうぜ」とか、「楓葉が滿山する時逢おう」等々実に不明瞭なそんなものだった。それに比べれば父親の歸家時間はずっと具体的だったし, 機械時代に比べればずっと曖昧だった. 冷えた手をさすりつつ峠の冷風の中に立って、いつ頃か陶然たる酔いと共に忽然と視界に現れる父親を迎えることには待つ喜びがある.
殺伐たる今日のソウルでもたまに予告無しでにわか雨が降る夕暮れの住宅街入口を通ると、多くのおばさんとか幼い子女等が傘を持って誰かを待っている風景を見る. 今頃何処かの居酒屋で酒に溺れている夫とか父親を待つ、熱くて喉の乾いた風景を見る. その時毎私は三日月が暮れて真っ暗になった峠で, 今や再び会える事無い父の白いトゥルマギを待つために我が兄弟が背を付け合って寒さを凌いだ恐ろしいほど寂寞な夜が恋しい.
* 초승달이 질 때 - 허세욱(許世旭)
소쩍새가 피를 쏟듯 구슬프게만 울던 늦은 봄 초저녁으로 기억된다. 산과 산이 서로 으스스하게 허리를 부비고 그들끼리 긴 가랭이를 꼬고 누운 두메인지라, 해만 지면 금시 어두워졌고 솔바람이 몰고 오는 연한 한기로 미닫이를 닫어야 했다.
40리 밖 읍내에 가셨다가 돌아오시지 않은 아버님을 마중하러 나는 세 살 아래 동생을 데리고 재를 넘었다. 한참 걷다 보니 속눈썹 같던 초승달이 지고 어디를 보나 까만 어둠이 밀려오는데 열대여섯 살 소년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무서움에 질려 있었다. 나는 동생의 손을 꼭 잡고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주먹만한 차돌을 주웠다. 그리고 그것을 땀이 나도록 쥐고 동생더러 뒤를 따라오라고 했다.
여느 때같이 쇠죽 냄새가 물씬한 머슴의 등짝을 앞세우고 그 뒤를 바짝 따르며 아버님을 마중했던 밤은 그래도 든든하고 재미있었지만, 그 밤처럼 풋나물 같은 두 형제만이 마중할 땐 떨리기만 했었다. 역력히 기억되는 것은 나보다 어린 동생이 훨씬 태연하고 의젓했던 것이었다. 겁을 먹다 보면 배도 고팠다. 자꾸만 커다랗게 들려 오는 부엉이 소리, 아버님의 호리한 체구에 표표한 흰 두루마기가 좀처럼 보이자 않을 때, 우린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우리 집 앞을 지나는 신작로엔 하루를 두고도 겨우 산판에 드나드는 트럭 몇 대와 누룽지처럼 쇠똥으로 얼룩진 황소의 달구지들만 삐걱거릴 뿐이었다. 20리 밖엔 기차가 통했지만 겨우 서너 번, 그것도 시커먼 화차고 아득히 연결된 임시 열차까지 셈에 넣어서 그랬던 것이다.
원래 소박하셨던 아버님은 읍내 출입이 있을 때마다 40리나 되는 먼 길을 아예 걷기로 작정하셨다. 그래서 새벽 일찍이 길을 뜨셨다가 으레껏 황혼이 지나서야 오셨다. 심한 경우는 백 리가 넘는 전주 나들이도 보행을 마다하시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겨우 열 살을 지난 뒤부터 시작한 마중이 제법 익숙해졌다. 외지에 나가 중학을 다닐 때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올 때면 나는 이 마중 같은 일로 학자(學資)를 토색질하던 불계수(不計數)의 빚을 갚으려고 했었다. 확실히 그런 예우가 있고 나면 책값을 주실 때 관대하셨다. 그리고 우람스런 머슴을 앞세우고 깜박이는 초롱불로 길을 밝히면서 도깨비 얘기나 들으면서 오싹오싹한 밤길을 걷는 데 짜릿한 재미도 약간 느끼곤 했었다.
그 밤도 그러한 몇 가지 속셈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럴수록 목적을 위해선 아버님을 꼭 마중해야 된다는 다짐을 굳혔었다. 이윽고 멀리 펄럭이는 하얀 두루마기를 보곤, 평소 응석 한번 부려 보지 못하고 자란 주제에 큰 소리로 "아버지"를 외쳤다. 그리고 우리 형제는 장신의 아버지 뒤를 따라 졸랑졸랑 돌아왔다. 여느 아빠처럼 두 팔에 형제를 거느리고 사탕이라도 한 개 속주머니에서 꺼내 주셨으면 했지만, 그렇게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지금은 더욱 그립다. 도연명(陶淵明)이가 낙향할 때 문간에서 마중했던 그의 치자(稚子)보다 우린 더욱 어리석어서 먼길을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우리들 자식이 원행(遠行)의 아버님을 마중하던 곳은 먼 고개를 넘어 돌들이 산을 이룬 성황 고개요, 비단물이 반짝이는 청강수(淸江水) 징검다리요, 숨이 깔딱이는 높은 비석재였다. 요즘처럼 편리하게시리 문전에서 영송하는 것은 사무적이어서 싫다. 통금 5분 전에 귀가하는 탕부(蕩父)나 낭아(浪兒)가 아닌데도 벨 소릴 듣고서야 슬리퍼를 끌며 발발이와 함께 문을 열어 주는 그런 것은 더욱 싫다.
지금은 분초를 다투는 약속에 서로 묶여 줄달음하는 정밀 기계 시대다. 옛날 우리 부조(父租)들이 사랑하는 친구들과 재회를 약속할 땐 '꽃이나 피거든 만나세.' 아니면 '풍엽(楓葉)이 만산(滿山)할 제 만나세.' 등등 정말 아리숭한 그런 거였다. 거기에 비하면 아버님의 귀가 시간은 훨씬 구체적이었고, 기계 시대에 비하면 훨씬 애매했다. 시린 손을 부비며 고갯마루 고추바람 속에 서서 언제쯤 거나한 취기를 데불고 홀연히 시계(視界)에 나타나실 아버님을 마중함엔 기다리는 기쁨이 있다.
살벌한 오늘의 서울에서도 때로 예고 없이 소낙비가 내리는 초저녁 주택가 입구를 스치면, 많은 아주머니나 어린 자녀들이 우산을 들고 누구를 기다리는 풍경을 본다. 지금쯤 어느 대폿집에서 술타령하는 남편이나 아빠를 기다리는 뜨겁고 목마른 풍경을 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초승달이 지고 까맣게 어두운 고개에서, 지금은 다시 뵈올 수 없는 아버지의 하얀 두루마기를 기다리느라 우리 형제가 등을 맞대고 추위를 견디었던 무섭도록 적막한 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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