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함께 변하는 독서의 즐거움 : 群ようこ의'財布のつぶやき'중에서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요즘 2,3년 확실히 독서량이 줄고 있다.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난시(亂視)는 있지만 안경 없이도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머리 속에 ‘노안(老眼)’이란 문자는 없었는데, 몸은 정직한 것이어서 당연하다는 듯 나도 노안이 되었다. 돋보기를 만들어,
“어머, 이렇게 잘 보인다.” 하고 감동했었는데, 썼다 벗었다를 되풀이하고 있었더니 무척 눈이 피로해진다. 그렇게 되자 나도 모르게 책을 손에 드는 것도 귀찮아지고 말아, 급격히 독서량이 줄고 말았다.
그렇기는 해도 작업상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이나 자료가 있다. 집중해서 책이나 자료를 읽고 난 다음은 그만 축 늘어진다. 장거리를 달린 듯 몹시 피곤해진다.
“아아” 하면서, 한동안 방심하고 있게 된다. 예전에는 필요한 책을 다 읽고 나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손에 들고 기분전환을 할 수가 있었는데, 몸이, “이젠 안 돼...” 하면서 발뺌하려든다. 몸에 무리를 강요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하고,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한 책을 읽는 건 단념한다. 그렇긴 해도 작업하는 책이나 자료를 별도로 하면, 2주일 동안에 한권, 심할 때는 한 달 동안 한권도 읽지 않는 꼴이 되는 것이다.
어느 날 집에 배달된 잡지를 뒤적이고 있었더니, 지금부터 기대되는 젊은 작가라는 특집이 있고 20명 정도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걸 보고 난 깜짝 놀랐다. 누구 한사람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읽지 않았어도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렇지가 않았다. 차례로 데뷔하는 아이돌의 귀여운 여자아이와 마찬가지로, 누가 누군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한동안 난 풀이 죽었다. 난 최근의 일본 현대소설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에, 작품의 내용은 알지 못해도 저자의 이름 정도는 알지 못하면 곤란하지 않은가 반성하면서 이름을 외우긴 했는데, 기억에 남아있는 건 5,6명이고, 미안하지만 뒤의 분들은 머리에서 지워져버렸다. 그럼 서점에 가 서가(書架)를 바라보면서 확인을 하면 좋으련만,
‘뭐, 어쩔 수 없지. 지워져버린 건 어쩔 수 없어’ 하면서 단념한다. 행동을 일으키는 파워도 없다. 독서라고 하는 건 이토록 체력, 집중력, 인내력이 필요한 것이라는 걸 이 나이가 되도록 알지 못했다. 50세를 넘어서 그 어느 것이건 파워가 다운되고 있다. 젊었을 때 침식을 잊고, 책을 계속 읽고 있었던 게 거짓말 같다.
요즘 젊은이들은 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고들 하는데, 휴대전화라던가 인터넷이라던가, 그 밖에 흥미 있는 게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쩌면 읽고 싶어도 기력이나 체력이 이어지지 않는 건 아닌지. 바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 클릭하면 차례차례 다른 화면이 나타나는 PC 화면은 수동적인 행위다. 거기에 익숙해지면, 종이에 문자가 인쇄되어있는 책을 계속 읽을 수 있는지 어떤지 의문을 느낀다. 기력, 체력, 인내력이 결여되고, 또 그것을 수정하려고도 하지 않는 젊은이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행위로밖에는 말할 수 없다.
책 같은 것 나이 들고 나서 읽으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젊은이도 있을는지 모르나, 나이가 들고 나서 읽으려 해도, 그 습관이 없으면 어지간히 근성을 집어넣지 않는 한 읽을 수 없다. 이건 통감했다. 지금은
“책을 읽지 않는다니 믿을 수 없다” 고 젊은이에 대해 한탄하고 있지만, 모든 것에 파워 다운 된 자신과 그들의 몸에 묘한 공통점을 발견하고,
“딴은 그렇군.” 하고 끄덕이기도 했다.
독서량이 줄어든 현실을 한탄함과 동시에, 젊었을 때 책을 읽어둬 다행이다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머릿속에는 남아있다. 여기서 책을 읽는 습관을 되찾아야지 하고, 난 몸에 힘을 주고 매일매일 서가(書架)를 지켜보고 있다. 읽고 싶어서 손에 들고 마는 건 예전에 읽었던 책뿐이다. 樋口一葉、永井荷風、尾崎翠、林芙美子、徳田秋声、三島由紀夫、夏目漱石....이것도 저것도 하면서 눈으로 찾아 책이 책상위에 산처럼 쌓이는데, 도대체 얼마만큼의 책을 읽을 수 있을는지. 오랜만에 페이지를 들춰보니, 파워 다운 된 몸의 기억에 어렴프시 남아있는 문장은, “아아 그래, 그랬었어, 그랬었지.” 하면서 스며들어 무척이나 기분이 좋다. 처음 읽었을 때의 자신의 생활도 기억이 난다.
옛날처럼 침식을 잊을 정도는 되지는 않더라도 읽은 책 수를 자랑할 필요 없이 연령이나 체력에 맞춘 책 읽기 방식이 있다. 모처럼의 독서 습관이 끊어지지 않도록, 이제부터는 천천히 마이페이스로 계속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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