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한 토막상식 -4-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 경사스런 날에는 왜 "세키한(赤飯)"을 먹을까?

"赤飯"은 글자 그대로 빨간 색을 띤 밥을 말하는 것으로, [세키한] [아카맘마] 혹은 사투리쪼로 [오코맘마]라 부른다.
요즘은 찹쌀에 팥을 두고 팥 삶은 물로 쪄서 빨간 색을 내지만, 옛날에는 "적미(赤米)"라 불리는 붉은 쌀을 사용해서 밥을 지었기 때문에 색이 빨갰다고 한다. 적미는 일본에서 벼농사를 시작할 무렵에 재배하던 매우 원시적인 쌀 품종으로, 원산지는 동남아라 하는데, 현재는 류큐(오키나와)열도와 큐슈.시코쿠 남부지방에만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적미는 오래된 희귀 품종이었기 때문에 조상을 기리는 날에만 이것으로 밥을 지어 영전에 올리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점차 적미를 재배하지 않게 되자, 적미 대신 팥으로 색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조상을 공양할 때뿐만 아니라 경사스런 날, 특별한 날에도 반드시 세키한을 지어 축하를 하고 있다.
....참고로, 에도시대에는 세키한과 상반되는 뜻으로 흰 찰밥을 장례식에 썼다고 한다.

* 축하연에는 왜 머리와 꼬리가 달린 도미가 나오나?

많은 나라 사람들이 재수를 따지지만, 일본사람 만큼 생활 습관에서까지 재수를 따지는 민족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단적인 예가 축하 요리로,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말장난 등으로 한층 고마움을 강조한다.

도미는 맛, 색깔, 이름에서 단연 축하 요리의 첫 번째로 꼽히는 생선이다. 생동감 있는 빳빳한 꼬리에 선명한 붉은 색은 축복의 색이며, 이름도 [めでたい의 たい]로 통해, [생선의 왕]이라 불리면서 축하 요리의 챔피언 자리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머리와 꼬리를 붙인 채로 요리하는 것은 잘린 것이나 부서진 것은 재수가 없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는, 다시말해 완벽한 형태여야 재수가 좋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찮은 정어리라 할지라도 머리와 꼬리를 붙인 채 요리하는 것은 이런 생각에서 나온 습관의 하나이다.

* 선술집에 노렌(のれん)을 걸어놓는 이유는?

요즘은 선술집의 새끼줄 노렌(繩のれん)이 노렌의 대표격라 할 수 있는데, 에도시대(江戶時代)에는 상점마다 빠짐없이 노렌이라는 것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노렌은 손님을 가게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밝은 대낮에는 노렌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은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 싶게 만들고, 밤이 되면 노렌 사이로 보이는 불빛이 손님을 유혹한다는 것이다. 손님 편에서는, 노렌을 헤치고 들어가는 게 문을 여는 것보다 훨씬 저항이 적어, 자기도 모르게 가게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노렌은 이처럼 손님을 끌어들이는 힘, 통과 자재성, 공간을 분할하는 효과등과 함께 그 가게의 심벌 마크로서도 커다란 의의를 지니고 있다.
[노렌이 헐었다]고 하면 연륜이 있는 점포를 가리키는 것이며, 점포의 신용에 대한 상징이 되기도 한다.

* 음식점 앞에 소금을 쌓아 놓는 이유는....?

개점 시간이 가까워진 음식점 앞에 피라미드 모양을 한 한줌의 소금이 쌓여있는 광경을 발견하는 수가 있다. 이것은 중국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손님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재수 축원 같은 것이다.

그 옛날, 중국의 황제는 수많은 측실을 거느리고 있었다. 스케일이 큰 중국은 한국이나 일본처럼 궁 안에 모든 측실을 모아두는 게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에게 저택을 내려, 밤마다 우차(牛車)를 타고 이들 저택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차의 걸음이 워낙 더딘데다 측실 수도 많아 공평하게 일순을 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측실에게는 자연히 황제의 발길이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총애를 잃은 측실은 평생을 외롭고 쓸쓸하게 보내게 되는 만큼 황제를 자기 저택으로 모셔들이기 위해 모두들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 한 측실이 묘안을 생각해 냈다.

만약 황제가 자기를 찾지 않는다면, 대신 우차를 끌고 있는 소를 멈추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험삼아 소가 제일 좋아하는 소금을 황제가 자기 저택 앞을 지날 때쯤 쌓아놓아 보았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소금을 발견한 소는 그것을 핥기 시작, 아무리 끌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황제는 다른 저택으로 가고 싶지만 소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 체념한 황제는 그 저택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녀의 작전은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 이후, 그녀는 매일 밤 같은 수법을 써서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이 유래를 근거로 하여, 손님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손님을 많이 들게 한다는 의미로 소금을 쌓아놓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