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병풍자수의 매력 - 민속문양 [民俗紋樣]
옛 병풍자수는 민족적인 조형 기질이 매우 잘 표현되어있어 단순히 공예품이라 부르기에는
작품성이 매우 뛰어났다.
4쪽이니 12쪽이니 하는 병풍은 쪽마다 화폭으로써의 예술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
전례 · 화조 · 산수에서 평생도 · 수렵도 · 행락도 같은 서사적인 그림에 이르기까지 그 주제와
내용의 종류가 많은데, 이 중에서도 산수나 서사적인 작품에 나타나는 풍경 묘사가
가장 멋진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다.
자수 병풍의 소재로 곧잘 쓰였던 소재 중의 하나는 십장생이다.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학, 거북, 사슴의 장수를 의미하는 열 가지 사물을 중심으로 하나의 풍경화를 이루는
십장생도(十長生圖)를 꼼꼼히 수를 놓아 그려낸 병풍에는 가족의 건강과 장수를 비는
여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십장생의 십(十)자는 천(天)과 지(地)가 합쳐진 뜻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해, 산, 물, 돌, 구름 등은 자연 그대로 영원히 존재하는 사물이기에
고대 이래로 왕권의 상징이 되었으며, 소나무, 불로초, 학, 거북, 사슴 등은 장수를 의미하는
상서로운 초목과 짐승들로서 왕자의 기상을 상징하였다.
이러한 장수의 상징물들은 각기 음양의 이치와 부합한다는 점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동양의 역법(易法)에 의하면 이 열가지 사물이 방위와 계절, 십간(十干)과 오행에 맞추어
해석되고, 해와 소나무, 산과 돌, 구름과 학, 사슴과 불로초, 거북과 물이 서로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음과 양은 두 가지가 서로 만남으로 인해 조직이 발생하고, 그 조직이 다시 뭉쳐서 생산력과
창조력으로 작용하여 정신적인 승화의 원동력이 된다. 동양의 예술가들은 만물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우주와의 조화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자수공예란 원래 목공 · 칠공 · 도공 · 금공과 같은 공장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일반 공예와는
그 차원이 달랐다. 길쌈의 발생과 함께 시작된 자수는 여인들의 손에서 탄생하여 여인들의 손으로
발전시켜 왔는데, 왕족에서부터 귀족의 부녀, 서민의 딸· 며느리에 이르기까지 수천년 동안
한결같이 이어져 내려온 규방공예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조선의 여인들은 수틀 위에 그들이
꿈꾸었던 아름다운 소망과,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애틋한 서정성을 마치 화가가 화폭을
채워 가듯이 올올이 비단실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동양의 자수는 놀라운 공예 미술로 인정받고 있으나, 옛 규중여인들에게 있어서는 인내와 참선의
훈련이기도 했을 것이다. 바늘 한땀 한땀 남은 자국마다에는 기다림과 한과 슬픔이 서려 있기에
자수라는 공예는 더욱 깊이 있는 아름다움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원래 좋은 그림을 보면 그 어느 부분을 따로 떼어놓고 보더라도 단편적인 부분 하나 하나가
그대로 훌륭하게 그려진 독립적인 그림으로 보인다.
우리의 옛 자수 병풍도 차분히 살펴보노라면 그 여러 폭 풍경의 어느 폭 어느 구석을 어떻게
잘라 놓고 보아도 그 한 조각이 그대로 독립된 조형의 세계를 갖추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조각 하나 하나가 모여 오색의 빛깔들로 어우러지면서 자연계의 모든 현상을 거두어 안은
모습으로 완성된 자수병풍은 하나의 소우주를 구성하고 있다.
자수병풍에 나타난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조선의 여인들의 미적 감각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 깊이 상념하고 또 멋지게 표현한, 자유롭게 왜곡하고 변형된
오색의 산하와 운무, 그리고 그 사이를 유유자적 거닐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 마치
꿈속에서 보는 것처럼 편안하고, 이 모든 것이 신비로운 색채로 둘러싸여 있다.
오색의 산정들은 마음만 내키면 금방이라도 보랏빛 하늬바람을 일으킬 듯, 담 너머에 솟아난
자줏빛 괴석들의 괴괴한 자세를 자수로 표현한 여인들의 손끝 예술은 규중 문화의 한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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