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타고 해운대 다녀왔습니다   -   기행문 [紀行文]

시작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고속철의 탑승객이 벌써 천만명을 돌파했답니다.
외국에서까지 시승하러 온다는 초고속 기차, 타보고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친구 두명을 꼬드겨서 강풍을 동반한 폭우예보를 무시하고 떠났지요.

서울역사부터 마치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기분이 들게 하더니 기차 역시
기대를 충족시켜줄 만큼 쾌적하게 달리더군요. 쉴새없이 지나가는 판매대만 아니면
더욱 편안하고 조용할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두시간반이라니, 정말 예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스피드입니다.

당사자들의, 휴식을 취하러 떠나는 여행이니 태풍인들 어떠하리, 하는 느긋한 마음과는
달리 주위에서는 날씨를 무척 염려하더군요. 그런데, 막상 부산에 도착하니 이미 강풍은
지난 뒤로,  약한 빗줄기가 흩뿌리고 있었습니다. 공연히 레인코트까지 걸치는
호들갑을 떨었나봅니다.

해운대를 찾은 게 얼마 만인지... 머릿속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눈부신 발전이
놀라울 뿐입니다. 한화콘도의 창밖으로 펼쳐지는 광안대교의 스마트한 쉐이프,
눈앞의 동백섬, 멀리 오륙도도 보입니다. 심하게 파도는 일지 않지만 진한 회색빛으로
변한 망망대해에는 뱃그림자 하나 없고 갈매기 한마리 날지 않더군요,
하지만 하염없이 바라봐도 질리기는 커녕 좋기만 합니다.

그저 편안히 쉬고 가려든 것이, 여류명사 친구와 남편 간호까지 팽개치고 달려온
친구 덕에 뜻하지 않은 호강을 합니다. 편안 옷으로 갈아입은 채로 따라나선 우리를
안내한 곳이  일류호텔 이태리 레스토랑! 우리 때문에 행여 회장님 낯 깎이지 않을지
불안한 것도 잠시였고, 와인을 곁들인 만찬이 시작되자, 초등학교 입학시험에서
한마디도 말을 하지않아 벙어리로 오인되어 불합격되었다는 에피소드에 뒤로 넘어가고,
학창시절의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오래 묵은 술맛처럼 우리의 오랜 우정이 모두를 마냥 행복하게 만들더군요.

회사 일은 어쩌려는지, 회장님이 기사겸 가이드노릇을 해 주고자 외제차를 몰고
아침일찍 나타났습니다.
화창하게 개인 아침의 동백섬 한바퀴돌기 산책은 그대로 몸과 마음을 살찌울 듯,
거목 사이로 빗살처럼 퍼지는 햇빛이 바닷바람과 함께 몸을 휘감습니다.
조용필의 노래로만 듣던 동백섬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 정말 예전엔 미쳐 몰랐지요.

어제 밤에 돌던 캄캄한 달맞이 언덕도 한낮의 드라이브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
해운대 일대를 달리면서 마치 이국에 온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생선초밥이 먹고싶다는 내말에 우리를 호텔의 일식당으로 안내하는 친구.
이렇게 호텔에서 계속 대접을 받아도 되는건지....
하지만 본고장 호텔의 생선초밥은 참으로 일미였습니다.

오후 4시 출발에 맞춰 부산시내까지 드라이브시켜 준 친구에게
그저 고마왔다는 말만 되풀이한 뒤 우린 역 앞에서 헤어졌습니다.
친구 잘 둔 덕에 알차고 디럭스한 1박2일 여행을 마친 것, 이것도 내 복이려니 생각하지만
미안한 마음은 쉽사리 가시질 않더군요.

부산의 두 친구, 신세 많이 졌어요. 따뜻한 마음씨 깊이깊이 간직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