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슈 알뜰여행(동생과 처음 가진 해외나들이)   -   기행문 [紀行文]

매해 이맘때가 되면 10여년전 동생과 일본나들이 갔던 일이 떠오른다.
모 일간지 협찬으로 여행사가 마련한 여름방학 특선이었는데, 6박7일 동안 큐슈를
돌면서 우리 선조들 흔적을 찾아보는 스케줄이었다.
40명이 좀 못되는 일행 중에는 방학을 이용하여 고국을 찾은 18세의 미국교포
여학생부터 81세의 전직 여학교 교사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가
섞여있었다.  우리를 인솔한 젊은 여행매니아가 어찌나 진지하고 학구적이었던지
대학생이건 대학교수이건 일사불란하게 그의 말에 따랐고, 한마디의 불평도
없었던 게 아직도 또렷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동생하고는 가까이에 살고 있으면서도 서로가 집안일에 얽매어 좀처럼 둘만의
여행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신문에 관광모집광고가 나자마자 멋대로
두사람의 참가신청을 하고, 파격적인 가격을 내세워, 동생을 꼬드겼던 것이다.
동생은 두살밖에 나이차이가 나지 않는 언니에게 늘 깎듯이 대했다.
무조건 언니의 뜻을 따르는 심성 고운 동생은 여행중 실수연발의 언니를 한번도
원망하거나 한심스러워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봐주었다. 항상 느끼지만
동생하나는 참 잘 둔것 같다.

오래 전 일이고 메모도 모두 날아가 버려 희미한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그나마 몇 장 찍은 사진이 남아있어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일이 되살아난다.

예나 지금이나 체력 달리는 건 어쩔 수 없어, 쿠마모토(熊本)성에 다다르자
성내를 오르내리는 일이 끔찍하게 여겨져, 오사카성 봤으니 본 셈치겠다고 동생만
들여보내고 난 나무그늘에 앉아 있었다.  카토키요마사(加藤淸正)가 지었으면
지었지 흥, 했지만, 눈길은 자꾸만 성 쪽으로 갔다.

스이젠지죠주엔(水前寺成趣園)은 모모야마(桃山)식 공원이라던가.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작은 동산처럼 만들어 놓고 후지산을 그린 것이라니,
참 그들답다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아소(阿蘇)산에 가던 날은 날이 잔뜩 흐리고 가랑비가 뿌렸다.
갑자기 그날 일이 떠오른다. 버스가 출발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한 대학생이
지갑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인솔자가 차를 세우고는, 여관에 전화를 걸어보겠다고
양해를 구한 다음 학생과 함께 내렸다. 돌아온 인솔자가, 다행이 여관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모두 안심하고 있는데, 그대로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학생을 인솔자가
엄한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
'학생 때문에 지체했는데 마땅히 죄송하다는 인사를 해야 하지 않는가,
당장 내려 여관으로 돌아가서 고맙다는 인사 제대로 하고 지갑을 찾아와, 그리고
기차를 타고 아소역으로 오도록, 대학생이면 그 정도는 혼자 할 수 있겠지'
굳은 얼굴을 하고 앞으로 나와 절을 한 다음 버스에서 내리던 학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물론 아소역에서 그 학생을 반갑게 만났고, 우리와 다시 합류했다.

아소산의 칼데라 분화구 앞에 가긴 갔는데, 무섭게 부는 바람과 안개비 때문에
천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목책 앞에서 사진은 찍었어도 본 건 아무것도 없다.

후쿠오카에서 타자이텐만구(太宰天滿宮)까지는 얼마 안되는 거리였다.
학문의 신을 모신 절이라는데, 대학에 입학할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 나하고는
무관하지만 경내를 둘러보기는 했다.
마침 텔레비존 프로 로케가 한편에서 진행되고 있어 학생들이 바글거렸다.
어디를 가나 10대들은 극성이고 시끄럽다.

벱푸에는 '지옥 둘러보기'라고 해서 끓어오르는 온천수를 몇군데 둘러보는 관광코스가
있는데, 우린 그 중에서 '바다지옥'을 구경했다. 커다란 연못의 물이 부글부글 끓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오후에 스기노이온천에서 목욕을 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흔해 빠졌지만,
그때는 스기노이호텔의 디럭스한 온천이 화제꺼리였었다.

사츠마야키(薩摩燒き)의 본고장 가고시마 쿠시키노(串木野)로 떠나는 날,
그 일대에 태풍경보가 내렸다.  새벽부터 빗줄기도 약해지고 바람도 많이 가라앉았다고
해서 우린 감행하기로 했는데, 길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운전사가 모두들 자리 뜨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산 위에 올라, 우리 옛도공들이 한달을 배에 시달리다
폭풍을 만나 떠내려왔다는 곳을 내려다보는데,  어찌나 물보라가 거센지
튀어 오른 물방울이 얼굴에 와 닿았다. 날 한번 기막히게 잡은 셈이다.

심수관 도예관에는 우리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고, 돌하루방이 우릴 반갑게 맞아
주었었지.

나가사키에는 기차를 타고 갔기 때문에 역에서 호텔까지 삼삼오오 전차를 탔다.
참 오랜만에 타 보는 전차였다. 그날은 자유시간이라 동생과 나는 1일용 전차표를 사서
탔다 내렸다 하면서 알지도 못하는 곳을 헤매고 다녔다.
그로버저택은 유명한 곳이라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어 찾아갈 수가 있었지만
가보고 싶었던 眼鏡橋, 孔子墓, 오란다사카 등은 끝내 못 찾고 시간낭비만 했다.

그로버저택에서 옥외에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걸 처음 보았다.
뙤약볕에 걸어 오르려면 땀께나 흘렸을번 했다.
저택에서 주변 경관을 바라보면서 오페라 나비부인 생각도 하고, 시바료타로의
소설(제목은 잊어버렸다) 생각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저렴한 알뜰여행이어서 숙박을 여관이나 유스호스텔에서 했는데, 마지막날
나가사키에서 처음으로 비즈니스호텔에 들었을 때의 동생의 기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유난히도 우릴 좋아하고 따르던 올드미스 일본어강사 두명,
이젠 결혼해서 아이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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