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봄나들이 - 기행문 [紀行文]
다녀왔습니다.
매해 봄에는 호텔에서 총회를, 가을에는 국내외로 여행을 하던 상례를 깨고, 능동적인
이번 임원들은 꽃피는 4월에 환상적인 강원도나들이를 마련했다는겁니다.
한 친구가, 앞으로 몇번이나 더 찾아올지 모르는 이 좋은 찬스를 어찌 아까와서 놓치겠느냐고
하더군요. 맞아요, 황혼의 길목에 선 우리에게 다음 기회란 없지요. 나는 여기저기 탈이 난
몸을 하고서도 무작정 여행에 따라나섰습니다.
이번에는 신참이 세명이던가요....? 아무튼 50여명이 버스 2대에 나누어 타고 이틀동안
봄을 만끽하고 돌아왔지요.
첫날. 발가락을 다쳐 걸음이 시원치 않기에 택시를 탄 게 실수였습니다. 이른 시각이라
쌩쌩 잘도 달리던 택시가 동호대교 입구부터 옴짝달삭을 하지 않는겁니다. 손전화가 있으면
뭘해요, 외울 수 있는 친구 번호가 하나도 없는데... 정말 울고싶었다구요.
집합시간을 5분 넘겼지만 요행히 우리를 싣고 갈 버스가 늦게 나타나는 바람에 친구들로부터
빈축을 사는 일은 면했습니다.
거의가 작년 가을 아키타(秋田)여행을 함께 했던 친구들, 무슨 비법을 썼을까요,
그때보다 훨씬 젊고 싱싱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더군요.
어느새 속초 유지가 된 한 친구의 사위가 바닷가 횟집에서 점심을 대접해 주었습니다.
푸짐한 회접시가 앞에 놓이자 친구들은 입맛부터 다십니다. 일렁이는 동해를 바라보며,
낮술은 안한다면서도 마지못하는 척 술잔을 드는 우리들은 마냥 기쁘기만 합니다.
대접을 받아서가 아니라, 10여년만에 보는 친구의 딸이 대견하고 귀엽기만 하더군요.
모두들 워터피아로 온천을 즐기러 가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호텔에 남은 넷이
2층 레스토랑에 모여앉았습니다. 손님이라곤 우리 네명뿐, 와인 잔을 앞에 놓고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설악의 오묘함이라니! 물안개가 마치 여인의 허리를 휘감듯이
봉오리를 감싸더니, 유유히 푸르름 속으로 사라집니다.
흐린 날씨이기에 더욱 신비스러운 신록의 수만가지 색깔! 어느 일본작가가 즐겨 쓰는
幽玄이라는 단어로 밖에 이 절경을 표현할 수 없는 나의 빈곤한 어휘력이 안타깝습니다.
워터피아, 안가길 잘 했지요.
드디어 만찬회. 꽃단장하고 나타난 우리 친구들 모두 30대입니다. 회장님의 특별 배려로
엔터테이너가 이끄는 여흥은 과연 프로답더군요. 상품을 건 테이블대항전에서는
지기 싫어하는 모교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 그야말로 혈전이었습니다.
워낙 잘 노는 친구야 그렇다 치더라도, 한구석에 얌전히 있던 친구들까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자기 테이블을 위해 음악에 맞건 안 맞건 상관없이 온몸을 흔들어대는 데는
배꼽을 잡지 않을 수 없었지요.
모두가 한줄이 되어 인연을 재확인하는 라스트에서 우린 서로 끌어안으며 진정한 우정을
주고받았습니다.
다음날.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며 화창한 봄날 아침의 설악을 감상했습니다.
디지틀 카메라를 소지한 친구가 기념촬영도 해주었는데, 자식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 만큼
멋지게 나왔습니다.
케이블카 탑승은 취소하고 신흥사까지 자유로이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와아, 대단한 인파! 수학여행 시즌이어서일까, 아무튼 인멀미가 날 지경입니다. 많이 걸을 수 없는
몸이니 친구에게 의지하고 조금만 서성거렸지요. 나무그늘에 앉아 단 공기를 마시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십대들의 넘쳐나는 에너지를 조금 부러워해봅니다.
오후는 백담사 관광입니다. 걸어가기에는 끔찍한 거리지만 버스가 입구까지 데려다주어
그 유명한 절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한심할 정도로 세속화되었더군요.
굽이굽이 돌아 산 깊숙이 숨죽이고 있던 절이 갑자기 화장하고 새옷입어, 그 어색함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집니다.
마침 이날이 장애인의 날이라는군요. 자원봉사자와 함께 나들이 나온 많은 장애인을
곁에서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속은 늘 조용합니다. 간밤에 나이생각 않고 가무에 몰입하여 에너지가 바닥났는지
앉아있을 기력마저 없어 맨 뒷자리에 몸을 눕혔습니다. 차창밖으로 흐르는 파란 하늘과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그대로 눈에 들어옵니다. 이처럼 빼어난 우리 설악인 것을,
좀더 가꾸고 단장하고 선전하면 온 세계인을 불러모을 수도 있으련만....
유능한 임원들의 노고로 우린 편안히 이틀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깊이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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