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겉핥기 - 기행문 [紀行文]
해외 나들이를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이메일, 팩스가 오가고 전화통에 불이 붙기를 20여일, 드디어 열여섯 숙년(熟年)여인이
3泊4日의 상해(上海) 소주(蘇州) 항주(杭州) 관광 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중국을 머리에 떠올리면 항상 난 혼란스러웠다. 중학교때 배운 중국의 역사와 지리,
김용옥교수가 열강(熱講)하는 중국의 철학, 그리고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육이오의
인해전술(人海戰術), 모택동, 홍위병 등등이 얽혀 중국의 참모습을 그려낼 재간이 없었다.
중공이 중국으로 바뀐 뒤 수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중국을 방문했고 이러니저러니
나름대로 느낌을 이야기했지만 그것들은 전혀 내게 도움을 주지 못할뿐더러 궁금증만
더하게 했다....
중국에는 소주(蘇州)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의 항주(杭州)에서 생활하면서
최고의 광동(廣東)요리를 먹고살다가 여주(余州)의 고품질 관에 들어가는 것이
최고의 일생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짧은 시일 안에 이 중 2곳과 국제도시 상해를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바람직한 여행 스케줄인가.
상해공항에서 내려 임시정부청사로 향하는 도중에 8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이 보였다. 10여년 전이던가? 아들아이가 중국탐방에서 돌아와 이
스타디움에서 한중축구전을 관람했다고, 그리고 우리가 멋지게 승리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일이 머리를 스친다.
상해임시정부 하면 김구선생이 떠오를 뿐 까마득한 옛일이니 솔직히 말해 그다지
감명깊지도 못해 건물을 보아도 아무 감흥이 없다. 우리는 시간을 핑계삼아
총총히 그 자리를 떴다.
밤의 상해는 환상적이었다. 특히 옛모습 그대로의 유럽식 건물들이 늘어선
황포(黃浦)강변은 상해의 얼굴답게 화려한 조명 아래 한층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소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야상해는 여느 국제도시처럼 요란하고
사치스럽지 않아 좋았다.
온몸을 어둠으로 감추고 머리에만 하얀 은가루 모자를 쓴 뾰족한 빌딩이 곁의 노란
술을 잔뜩 늘어트린 사각모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가 하면 황금빛 별무리
일루미네이션이 높게 낮게 하늘을 수놓는다. 고가도로의 교각에서 흘러나오는
명주실같이 가느다란 푸른빛은 얼마나 교각이 희고 깨끗한가를 말해주려는 것인가.
마르코폴로가 동양의 베니스라고 부른 물의 도시 소주는 베니스와는 또다른
중국적인 멋이 깃들어 있었다. 운하를 따른 흰벽에 둥근 창, 그리고 늘어진
실버들 사이를 누비는 작은 배가 그대로 한폭의 동양화다.
진시왕은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수양제는 운송수단으로
북경에서 항주까지 장장 1800킬로미터의 인공운하를 만들었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그들의 스케일이다.
졸정원은 각처에서 모여든 관광객으로 북새통이었다. 우리나 일본과는 달리
예로부터 의자생활을 하던 중국인, 화류로 조각된 의자에 앉아 창너머 연못을 통해
사계절을 음미하던 중국 부호들의 사치를 쉽사리 느낄 수 있다.
한산사를 거처 호구(虎丘)에 자리잡은 옛 오국(吳國) 왕 합려의 능을 보러갔다.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가 합려왕 밑에 있었다고. 오월동주(吳越同舟)니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니 하는
고사성어도 소주의 오(吳)나라와 항주의 월(越)나라가 서로 나라를 뺏고 빼앗기던 춘추시대 말기에
생긴 말이라고 한다.
항주는 지리적으로 혜택을 받은 탓일까 도시는 물론 절강성(浙江省) 전체가 윤택했다.
관광에 빼놓을 수 없는 서호(西湖)는 북송의 시인 소동파와 당대의 시인 백락천이 제방을 쌓은
자연호로, 둘레에는 제철을 만난 실버들이 간밤의 비로 깨끗이 머리감고 수줍은 듯
몸을 틀고 있었고, 사이사이에는 홍매(紅梅) 백매가 만개해 있었다.
유람선상에서 일사천리로 읊어대는 조선족 안내원의 설명은 그대로 귓가를 맴돌다 사라지지만
각막에 찍히는 빼어난 풍광은 선명하게 머릿속에 하나하나 쌓여간다.
영음사(靈陰寺)의 거대한 금도금 불상은 계수나무로 만든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이라나.
중국인들이 향을 다발 채로 태워 대웅전 안이 연기로 자욱했다. 중국인들은 향의 수효만큼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안내원은 어김없이 우리를 실크가공 공장과 용정차 재배원으로 데려갔다.....
개그맨 심현섭 뺨치는 친구 덕에 버스 안의 두세시간은 깔깔대다 보면 지나간다.
레퍼토리도 다양한 끊일 줄 모르는 합창, 동요에서 칸초네까지 모르는 게 없이 하나가 부르면
원어(?)로 이어진다. 안내원, 드라이버 모두 기가막히다는 얼굴이다.
친구들끼리의 여행은 이래서 좋다.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50년전으로 돌아가 마음껏
떠들고 웃어대던 나흘간이었다.
(2001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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