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그것이 문제로다!   -   잡문 [雜文]

올 여름은 팔월 초에 정밀검사 받으러 병원에 한번 가느라고 외출을 했을 뿐

꼬박 집안에 틀어박혀 보냈다. 밤에 산책을 잠깐 나간다던가, 필요한 게 생겨

근처 약국이나 마트에 갔을 뿐, 차를 타고 시내에 나간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어제, 봄에 일본 문화원에서 빌려 온 책을 아직도 반납하지 못해 늘 마음에 걸렸기에,

딸아이를 앞세우고 나갔다가 그야말로 길치의 본색을 들어내면서 혼쭐이 난 이야기.

그동안 지하철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들어 거의 이용을 안했더니 전에 늘 타고 다니던

역마다 출입구가 생소했고, 충무로역에서는 완전히 동서를 분간 못해 헤맸던 것이다.

암튼 쓴웃음이 난다. 변두리 서울은 몰라도 시내 한복판은 곧잘 찾아 돌아다녔건만

나날이 변모하는 서울 거리가 눈에 설고 생소해 혼자 외출은 이제 단념해야 할 판이다.

딸아이가 인터넷으로 찾아낸 인사동의 일식집에서 특별 초밥을 시켜 맛있게 먹고,

일본 문화원에서 책도 별 탈 없이 반환하고, 구미 당기는 책이 있어 또 2권 빌린 것

까진 좋았는데, 이왕 시내 나온 김에, 맛있는 호텔식빵을 사러 가기로 한 게 화근이었다.

퇴계로까지는 전철로 세 정거, 간단히 생각하고, 미리 봐둔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다가,

바로 눈앞에 에스컬레이터가 보여 (전에는 분명 없었다!) 냉큼 탔더니 내린 곳이

지하상가로 바뀌어 있었다. 한참을 헤매어 겨우 타는 곳을 찾았지만, 아무튼 그 때부터

서울 촌사람이 되어, 퇴계로에 있는 호텔까지 가느라고 지하에서 헤매고 지상으로 나와

우왕좌왕, 까딱 잘못하다간 길 건너기 위해 남산까지 올라갈 번 한 생각을 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자 그냥 소파에 엎으러졌다. 휴대전화를 꺼내보던 딸이,

[엄마, 우리 오늘 5천 걸음 걸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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