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月의 斷想   -   잡문 [雜文]

유월에 접어들면 아직도 맨 먼저 六二五가 떠오르고
바로 큰오빠의 모습이,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제 잊어버릴만도 하련만 엊그제 일도 까맣게 잊는 주제에
60여년 전의 일은 왜 그렇게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건강을 잃고부터 거의 매일밤 꿈자리가 뒤숭숭한데, 그래도
깨고 나서 기분이 언짢지 않은건 어머니와 큰오빠 꿈을 꾸었을 때다.

어제도 어머니와 하동관에서 곰탕을 먹는 꿈을 꾸었는데
그건 아마도 동생과 전화로 어릴적 이야기를 한참동안 나누었기
때문이리라. 아니면 생일달이라 어머니가 해주던 생일 음식이
생각나서였을까?
솜씨가 좋던 어머니는 무얼 해 놓아도 일미여서 우리가 정신없이
먹고 있으면 ‘그렇게 맛있니?’ 하면서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당신은 늘 입맛이 없다며 소식을 하셔서 작은 체구에 살이라곤
없었는데....

육이오를 떠올릴 때 마다 나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첫째 이유는
우리 가족으로부터 큰오빠를 빼앗아가버린 일 때문이다.
타의에 의해, 가족을 위해 격전지로 떠나던 날, 핼쓱한 얼굴로
마루끝에 앉아있던 모습, 내가 본 그 마지막 모습이 생각나면
난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머니는 큰아들을 잃고도 우리들 앞에서 단 한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넋두리 한마디 토하지 않던 어머니의 가슴 속이 얼마나
시퍼렇게 멍들었을까 나이 들어 비로소 헤아릴 수 있었던 멍청한 나.

오빠의 몇장 안되는 사진을 꺼내본다. 참 잘 생겼구나.
아직 살아있으면 팔십을 넘은 인자하고 품위있는 멋진 어르신이
되셨을텐데....
자꾸만 마음이 공허해지는 건 아마도 내 앞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다가올 찜통더위에 지레 움츠러든 것도 한몫 거든
모양이다                                      



6월의 기억  - 김정원

炎天의 비탈에
날마다 곤두선 목숨

빈 냄비엔
단호박 씨앗 너댓
허기진 천리길도
해질녘이면 닿을 듯

길은 돌아 강물을 쫓고
새벽꿈에 젖은
두려움의 城 하나를
우린 기대어 걸었다.

길의 피바다
불씨의 고동
뙤약볕의 매미 울음마저
거듭 앓으며

열 여덟 같은 또래의 유령들이
주검으로 널브러진
6月의 南行길
너는 종내 말이 없었다

만에 하나
내 살아 남는다면
살아 다시 돌아온다면
버린 내 집 뒤켠
한갓진 터 골라 앉아
목 놓아 너를 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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