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寶第31號 : 瞻星臺 첨성대 - 민속문양 [民俗紋樣]
國寶第31號 : 瞻星臺
所在地 : 慶北慶州市仁王洞839-1
時代 : 新羅
天體の動きを觀察した新羅時代の天文觀測臺。高さ9.17メートル。
支柱の役割をする基壇部の上に酒壷形の圓筒部を揚げ、最上に井字の形をした
頂上部を置いた形態を成している。奈勿王陵の隣に構えている。
圓筒部は扇形の石で27段を築き上げているが, なめらかに仕上げた外部に対し
內部は石の端がでこぼこになっておる. 南東側に開けた窓を中心にして
下側は荒石で埋められ、上方は頂上まで筒抜けになっている.
東側の半分が板石で塞がれている頂上部は井字形で、組み合わせられた長い
石材の端が外側まで突き出ている. このような姿は19∼20段, 25∼26端でも見掛け、
内側で梯子を立てるのに適当だったと見受けられる. 古い記錄に依ると,
“人が中間から上がるようになっている”となっており, 外側に梯子を立て、
窓を通して中に入り、再び梯子を使って頂上に上がり天を觀察したことと思われる.
天文學は、空の動きによって農事の時期を決定出来るという点で農業と深い関係にあるが
觀測結果に従い國家の吉凶を占った占星術が古代國家で重要視されたことに鑑みると
政治とも深い関わりがあったことが判る. それで早くから國家の大きな關心事になり,
瞻星臺建立の良い背景になったことと察せられる.
新羅善德女王(在位632∼647)時代に建立されたと伝える。現吊北側に若干傾いて
いるが、ほぼ原型を保っている. 東洋で最も古い天文臺として高い價値があり,
當時の優れた科學水準を見せてくれる貴重な文化財である. [文化財廳]
국보 제31호 : 경주첨성대(慶州瞻星臺)
소 재 지 :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시 대 : 신라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이다. 내물왕릉과 가깝게 자리잡고 있으며, 높이는 9.17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긴 하나 거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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