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엄마   -   잡문 [雜文]

여드레만에 딸아이가 파리 출장에서 돌아왔는데,
에미라는 사람이 날짜를 잘못 짚어 하마터면 저녁도 안해놀뻔했지 뭡니까.
월요일 도착을 월요일 출발로 착각했던거죠.
모자가 찬밥으로 저녁을 때우려고 밥통을 열어보니 한사람분도 채 안되게 남아있어
부랴부랴 밥을 안쳤더니 딸아이가 들이닥친 거에요. 정말 아찔했어요.
다행히도 돼지삼겹살 고추장 양념해 논 것이 있어 전기 냄비를 꺼내 김치 좀 넣고
볶음도 아니고 찌개도 아닌 우리집식 요리를 만들어 오랜만에 오붓이 둘러앉아 먹었지요.

일주일동안 다리품을 어찌나 팔았는지 체중이 몇킬로 줄었느니, 맛있는 거
사 먹을 시간도 없었느니, 고생스러웠던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딸아이가 짐을 푸는데,
떠날 때 분명 난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해 놓고는,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자꾸
가방 속으로 시선이 가는거에요. 이러다 정말 없으면 섭섭한 표정 그대로 드러날까
한 걱정하면서말입니다.
그런데요 글쎄, 이거 엄마꺼, 하면서 구두를 두 켤레나 내 앞에 내미는 거에요.
샌들 한 켤레, 로퍼 한 켤레. 게다가 헝겊으로 만든 캐주얼백까지.

사람이 제 나이 잊는 것, 그거 웃을 일 아니더라고요. 한쪽 발에 한짝씩 신고
거실을 왔다갔다 왔다갔다... 어머 너무 편하다 얘, 너무 좋다, 너무 멋져....
혹시 아들아이가 한심한 얼굴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쳐다봤더니
'아끼지 말고 열심히 신어요. 시장 갈 때만 빼고...' 빙그레 웃으며 그러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