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기
요즘 살림을 딸에게 떠맡기고, 가사 일에 통 신경을 안 썼더니 이것저것 구입해야
할 게 많다기에 오랜만에 점심도 외식을 할 겸 오후 한시쯤 집을 나섰다.
한낮이라 햇볕이 따뜻할 것 같아 반코트 차림으로 나갔는데, 길가의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 솜 누비 코트 차림이다. 눈이 펑펑 쏟아지고 길이 꽁꽁 얼면
모두들 뭘 입고 나다니려나,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는 날 보고 딸아이가 피식 웃는다.
우선 청량리 중국요리점에서 오랜만에 삼선짜장면을 시켰는데, 딸아이는 맛있다고
다 먹었지만 난 3분의 1을 남겼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양이 그만큼 줄어서...
한낮이라 햇볕이 따사로와 산책하는 기분으로 경동시장까지 천천히 걸었다.
이 시장에 오면 언제나 느끼는데 장보러 나온 사람 대부분이 늙은이들이라는 게
왠지 씁쓸하다. 남녀 할 것 없이 상점마다 기웃거리는 늙은이들이 하나같이 카트를
끌고 있으니 걸리적거려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양념꺼리가 떨어져간다며 우선 마늘과 고춧가루, 생강을 사고, 천천히 걸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흰떡, 귤, 곶감, 그리고 저녁거리로 다듬어 놓은 동태와 어묵, 오이를 사니
둘이 나누어 들어도 짐 보따리가 묵직하다. 딸아이가 내가 든 가방이 무거워보였던지
올해 안에 한번 더 산책삼아 나오자면서 나를 이끈다. 못 이기는 척 뒤따라 나오는데,
수입품 파는 점포가 눈에 들어와 늘 식후에 먹는 쵸콜릿을 한 팩 더 사가지고 돌아왔다.
돌아와서 딸아이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엄마, 오늘 우리 4300걸음이나 걸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