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雜文]
나의 애완용품
yoohyun
2018. 3. 8. 11:26
갑자기 컴퓨터 화면이 깜박거리더니 꺼져버린다. 깜짝 놀라 딸아이를 불렀다.
오래 되어 수명이 다했나? 하면서 코드를 빼고는 모니터를 들고 아파트 입구에 있는
전기용품점에 나가더니 금방 되돌아와 문이 닫혔다고 한다. 그럼 어쩌지? 맥이 확 풀린다.
딸아이는 우선 테이블 위를 정리하고 난 뒤 선반 아래에서 큼지막한 상자를 꺼내고는
뭔가를 잔뜩 찾아내어 컴퓨터 세팅을 다시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거들지도 못하고
멀찌감치 서있는데, 좀 지나니까 모니터 화면이 뜬다 !
‘아니, 어떻게...?’
‘오빠가 하는 거 배웠지, 흐흐.’
‘그런 부품 언제 사 모았는데?’
‘전에 오빠가 쓰던 거 고대로 잘 간수했지.’
이렇게 해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재주 많은 남매를 키운 게 자랑스러웠다^^;
거의 종일 컴 앞에 앉아 신문도 읽고, 궁금한 거 찾아도 보고, 게임도 하고, 나름대로
치매예방이랍시고 글도 써보곤 하는데, 갑자기 못쓰게 되면 무엇으로 시간을 때우나,
쓸데없는 걱정까지 한 게 바보스러웠다.
이상하게도 소설은 잠자리에 누워야 읽게 되는 버릇이 생겨 한낮에는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건, 밤에 누워 책을 펴들면 어제 밤에 읽은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다. 할 수 없이 앞부분을 들춰 보고, 아아 그랬었지, 하면서 이어 읽는 한심한 나.
그래도 치매 걸리지 않으려면 꾸준히 읽어야 해!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오늘 밤도
돋보기를 쓰고, 스탠드 불을 조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