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雜文]

대중교통을 생활화 합시다??

yoohyun 2007. 4. 28. 11:32
마치 초여름 같은 화창한 봄날입니다. 종로까지 나갈 일이 생겨
오늘은 봄 길을 즐길 양으로 지하철 대신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요즘 버스는 탈만 합니다. 우선 새 버스에, 기사 아저씨가 인사까지 해 주지요,
정류장 안내방송 나오지요, 함께 정면 위의 전광판에 이번 정류장 다음 정류장
이름이 자막으로 흐르지요, 양쪽으로 문이 활짝 열리면 층계도 없어
바로 인도로 연결되지요. 게다가 버스 전용선으로 달리니 막히지 않지요,
승객 많지 않아 앉아 갈 수 있지요....

운 좋게 맨 앞자리가 비어 있어 올라앉았더니
와아! 탁 트인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신록의 터널이 환상입니다.
어느 틈에 가로수 은행나무의 새싹이 저처럼 파랗게 돋아났을까요.
언제 철쭉이랑 영산홍이 저렇게 무더기로 온 거리를 뒤덮었을까요.
완만한 내리막길이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입니다.
늘 인적이 드믄 이 길은 철마다 색깔이 바뀌면서 계절을 앞서 갑니다.

이 버스를 이용하는 날은 왠지 어린시절이 그리울 때입니다.
버스는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거리를 오늘도 지나가줍니다.
야산 중턱에 자리한 초등학교가 아파트단지에 묻혀 끝자락만
얼굴을 내밀고 있어도 난 수월하게 까마득한 옛일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2차대전말기, 아마도 4학년이었을거에요, 신축된 저 교사로 이사할 때
어느 학교에선가에서 내 준 헌 의자를 하나씩 어린 등에 짊어지고
추운 겨울날 창경궁 담을 돌아 학교까지 걸어갔던 일,
선생님 심부름을 잊고 그대로 귀가했다가 해질 무렵에 생각이 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산길을 죽어라고 달려 다시 학교로 가던 일...
해방 직후 부임해 온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내게 별 심부름을 다 시켰지요.
두 정거나 걸어가야 하는 우체국에 등기 소포를 부치러 보내질 않나,
언덕너머 학교로 전근 간 남자선생님한테 편지 심부름을 보내질 않나.
기다렸다 꼭 회답을 받아오라고 신신당부까지 합니다. 물론 공부시간에요.
‘넌 한글 다 깨쳤으니 공부 안해도 된다’
심부름 보낼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초가을 햇살이 제법 따가와 학교로 돌아오면 얼굴이 발갛게 익었지요.

무심히 올려다 본 버스 전광판에 자막이 흐릅니다.
· 아름다운 환경 건강한 사회
· 자원을 아낍시다
· 수도물의 중요함을 생활화하자
· 쓰레기 분리수거를 생활화하자
· 쓰레기 종량제를 정착화하자
· 내리고 탈 때 질서를 지키자
· 대중교통 이용을 생활화하자

응? 이 대목에서 난 그만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이 버스를 타고 있는 승객은 이미 대중교통 이용을 생활하고 있는데,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