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문양 [民俗紋樣]

國寶25號: 新羅太宗武烈王陵碑 신라태종무열왕릉비

yoohyun 2008. 9. 12. 18:11
     


    


國寶25號: 新羅太宗武烈王陵碑
位置: 慶北慶州市西嶽洞844-1
時代: 統一新羅

新羅第29代王,太宗武烈王陵の前に立つ石碑. 太宗武烈王(金春秋, 在位654∼661)は、金庾信と共に唐國を後援勢力として三國統一の基盤を築いた人物である. 統一新羅時代に立てられた碑は中國唐國の影響を受け、支石は龜の形態を成しており, 碑体の上頭石には大蛇の模様が彫られている。太宗武烈王陵碑は、かような樣式からな成る最初の例とつたえる.

碑閣の中に収まっている碑は、現在、碑体を失ったまま頭石のみ龜の支石上に重ねられている. 龜は首を高く掲げ、足を力強く延しながら前進する形で, 背には大きな蜂巣模様の六角型が刻まれており, 背の中央に作られた碑座(碑体を挿すようになっている四角の溝)の回りには蓮の彫刻をほどこした. 頭石の左右には6匹の竜が3匹づつ絡まりあって如意珠を支えており, 前面中央に ‘太宗武烈大王之碑’と彫刻することで碑主を明かしている.

統一新羅文武王元年(661年)に建立され, 名筆家として有名な武烈王の次男金仁文?の書で碑文が彫刻されている. 寫實的で生動感あふれる表現により、まるで生きて動くような強い印象を受けると共に三國統一を成し遂げた新羅人の前向きな氣象をも感じられる.
わが国だけではなく、東洋圈の中でも最高に優れた傑作であると称えられる作品で, 熟練した腕前で練り上げた技法を以て當時の石造彫刻の發達像を推察することができる.
<出處 文化財廳>

국보 25호 신라태종무열왕릉비 新羅太宗武烈王陵碑)
경북 경주시  서악동 844-1
통일신라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의 능 앞에 세워진 석비이다. 태종무열왕(김춘추, 재위 654∼661)은 김유신과 함께 당나라를 후원세력으로 삼아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던 비(碑)들은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받침돌은 거북 모양을 하고 있고, 비몸위의 머릿돌에는 이무기의 모습을 새겨져 있는데, 태종무열왕릉비는 이러한 양식이 나타난 그 최초의 예가 되고 있다.

비각안에 모셔져 있는 비는 현재 비몸이 없어진 채 거북받침돌위로 머릿돌만이 얹혀져 있다. 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등에는 큼직한 벌집 모양의 육각형을 새긴 후,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碑座:비몸을 꽂아두는 네모난 홈) 주위로 연꽃조각을 두어 장식하였다. 머릿돌 좌우에는 6마리의 용이 3마리씩 뒤엉켜 여의주를 받들고 있으며, 앞면 중앙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고 새겨 놓아 비의 주인공을 밝히고 있다.

통일신라 문무왕 원년(661)에 건립되었으며, 명필가로 유명했던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글씨로 비문을 새겨 놓았다. 표현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강한 인상을 주며,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인들의 진취적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양권에서도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으로, 능숙하게 빚어낸 기법에서 당시 석조 조각의 발달상을 엿볼 수 있다.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