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紀行文]
첫 해외 나들이
yoohyun
2006. 7. 6. 19:29
‘鈍馬가 정상에 오를 때까지’를 번역하여 번역란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 2003년 3월 초,
아직까지 3분의 2밖에 진도가 나가지 못했지만, 말레이시아대사로 부임하는 대목에
이르자 잊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머리속에서 쏟아져나와 나의 가뜩이나 더딘 일손을
또 멈추게 한다.
1981년 이른 봄의 일이었다. 서울에서 열린 공관장회를 마치고 임지인 쿠알라룸프르로
돌아가는 오빠를 무작정 따라나선 것은. 난생 처음 나라 밖으로 나가게 된 나는,
비록 부모님은 안계시고 이국땅이기는 해도 친정나들이라는 생각으로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임지로 떠나는 대사들이 바글대는 공항 귀빈실 한귀퉁이에 숨 죽이고 앉아있던 일,
홍콩까지는 대한항공의 호의로 뜻하지 않은 1등석에 앉아 가게 되었던 일,
홍콩의 별 다섯개 호텔 트윈룸에 혼자 들어가 어쩔 줄 몰라 하던 촌뜨기가
이른 새벽 소파에 몸을 묻고, 툭 트인 창너머로 쉴새없이 오르내리는 크고 작은 선박들을
보면서 무한한 행복에 젖었던 일들이 선명하게 눈앞을 스친다.
쿠알라룸프르 대사관저에서 20일을 머무는 동안 나는 몸 구석구석에 쌓인 피로를
깨끗이 닦아냈다. 어릴 때 집안일을 도와주면서 함께 자란 아이가 어엿한 요리사로서
관저 주방을 관리하고 있어, 엄마의 손맛을 그대로 전수한 그녀의 음식이 끼니때마다
내 식욕을 돋구워 주면서 친정에 왔다는 실감을 안겨주었지....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말레이시아 외상이 주최하는 대사초대 골프대회에 게스트로
따라갔던 일이다, 영어도 못하면서 각국 대사들 틈에 끼어 앉아 만찬 분위기를
즐기기는커녕 어서어서 끝나기만 바라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쓴웃음이 난다.
그 곳은 말레이시아 부호들의 휴양지라는데 참으로 예쁜 별장들이 산 속에 묻혀있었다.
올케하고의 싱가폴 여행도 환상적이었다. 싱가폴은 쿠알라룸프르와 같은 기온인데도
바닷바람이 불어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도착하던 날 싱가폴 대사부인이 점심을
클럽에서 대접해주고, 차를 마시러 관저에까지 갔던 일이 생각난다.
오차드거리였던가, 서울에서 신고 간 샌들을 벗어버리고 새련된 구두를 사 신었던 게....
올케가 사준 와인칼라 원피스와 함께 돌아와서 한 10년은 애용했나보다.
혼자 귀국하는 내가 못내 걱정스러웠는지 오빠는 홍콩에서 대한항공으로 갈아타기 위해
하루 머무는 동안에는 꼼짝 말고 호텔 속에서 지내라고 신신당부하였건만, 난 겁도 없이
초저녁 홍콩거리를 쏘다녔다. 택시를 타고 중공백화점을 찾아가 비취 목걸이 반지 등도
사고, 선물용 동양자수 소품들도 구입하면서 남은 외화를 처분하던 일이 엊그제 같건만,
그동안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쿠알라룸푸르도 몰라보게 변했을텐데
내 생전에 다시 가 볼 기회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아직까지 3분의 2밖에 진도가 나가지 못했지만, 말레이시아대사로 부임하는 대목에
이르자 잊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머리속에서 쏟아져나와 나의 가뜩이나 더딘 일손을
또 멈추게 한다.
1981년 이른 봄의 일이었다. 서울에서 열린 공관장회를 마치고 임지인 쿠알라룸프르로
돌아가는 오빠를 무작정 따라나선 것은. 난생 처음 나라 밖으로 나가게 된 나는,
비록 부모님은 안계시고 이국땅이기는 해도 친정나들이라는 생각으로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임지로 떠나는 대사들이 바글대는 공항 귀빈실 한귀퉁이에 숨 죽이고 앉아있던 일,
홍콩까지는 대한항공의 호의로 뜻하지 않은 1등석에 앉아 가게 되었던 일,
홍콩의 별 다섯개 호텔 트윈룸에 혼자 들어가 어쩔 줄 몰라 하던 촌뜨기가
이른 새벽 소파에 몸을 묻고, 툭 트인 창너머로 쉴새없이 오르내리는 크고 작은 선박들을
보면서 무한한 행복에 젖었던 일들이 선명하게 눈앞을 스친다.
쿠알라룸프르 대사관저에서 20일을 머무는 동안 나는 몸 구석구석에 쌓인 피로를
깨끗이 닦아냈다. 어릴 때 집안일을 도와주면서 함께 자란 아이가 어엿한 요리사로서
관저 주방을 관리하고 있어, 엄마의 손맛을 그대로 전수한 그녀의 음식이 끼니때마다
내 식욕을 돋구워 주면서 친정에 왔다는 실감을 안겨주었지....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말레이시아 외상이 주최하는 대사초대 골프대회에 게스트로
따라갔던 일이다, 영어도 못하면서 각국 대사들 틈에 끼어 앉아 만찬 분위기를
즐기기는커녕 어서어서 끝나기만 바라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쓴웃음이 난다.
그 곳은 말레이시아 부호들의 휴양지라는데 참으로 예쁜 별장들이 산 속에 묻혀있었다.
올케하고의 싱가폴 여행도 환상적이었다. 싱가폴은 쿠알라룸프르와 같은 기온인데도
바닷바람이 불어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도착하던 날 싱가폴 대사부인이 점심을
클럽에서 대접해주고, 차를 마시러 관저에까지 갔던 일이 생각난다.
오차드거리였던가, 서울에서 신고 간 샌들을 벗어버리고 새련된 구두를 사 신었던 게....
올케가 사준 와인칼라 원피스와 함께 돌아와서 한 10년은 애용했나보다.
혼자 귀국하는 내가 못내 걱정스러웠는지 오빠는 홍콩에서 대한항공으로 갈아타기 위해
하루 머무는 동안에는 꼼짝 말고 호텔 속에서 지내라고 신신당부하였건만, 난 겁도 없이
초저녁 홍콩거리를 쏘다녔다. 택시를 타고 중공백화점을 찾아가 비취 목걸이 반지 등도
사고, 선물용 동양자수 소품들도 구입하면서 남은 외화를 처분하던 일이 엊그제 같건만,
그동안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쿠알라룸푸르도 몰라보게 변했을텐데
내 생전에 다시 가 볼 기회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