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紀行文]

삼다도라, 제주에는...

yoohyun 2005. 12. 12. 16:57
무신론자인 내가 불교친선모임에 묻어 간다는 게 좀 께름하긴 했지만
모두 마음씨 곱고 착한 친구들이기에 안심하고 따라나섰던 제주도 여행이었다.
떠나기 전날 때아닌 천둥번개에 비바람이 몰아쳐 이러다 벼르던 제주도여행
무산되는 게 아닌가 혼자 전전긍긍했지만 다음날은 맑게 갠 늦가을 날씨,
그래도 기온이 많이 떨어져 덧옷을 반코트로 갈아입었다.

11월말이면 비철일텐데 웬 나들이객이 그리도 많은지, 가는 곳 마다 관광버스가 즐비했다.
요즘은 중학교 수학여행도 업그레이드되었는지 뭍에서 온 풋풋한 소년소녀가 곳곳마다
바글댄다.
여행사에서 우리 나이에 맞춰 널널하게 잡아준 스케줄 덕에 힘든 줄 모르고 편안하게 보낸
사흘이었다. 게다가 서로 챙기고 보살펴주는 심성 고운 친구들에 둘러싸여있으니 신경 쓸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이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니 웬 복인가.
성지행님 대직행님 그밖의 보살님들 정말 고마왔습니다.

아침부터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일렁이는 바다에 취한다. 아주 조금씩 일렁이는 바다,
수평선 위의 점 같은 배 두척, 그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면서 살아있음에 고마움을
온몸으로 느낀다.
패키지여행에 어김없이 끼어있는 쇼 관람. 이번에는 중국곡예와 몽골마상쇼란다.
그옛날 동네에 들어왔던 곡마단을 떠올리게 만드는 텐트속으로 들어가 스토브가까이에
자리잡는다. 한시간짜리 쇼는 그리 놀랄만한 게 못되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짜리 꼬마
둘이 마상에서 곡예를 펼치는 걸 보면서 안스러운 마음에 박수도 제대로 칠 수 없었다.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라는 입간판이 크게 붙어있는 송악산에 들렀다. 대장금의
마지막 신을 찍었다는 동굴을 보기 위해 크고작은 화산덩어리가 뒹글고 있는
모래밭을 걷는다.
절벽아래에 뚫려있는, 세트장으로 사용한 동굴은 2차대전 말에 일본군이 어뢰정을
숨기기 위해 파놓은 인공동굴이란다.
괴물이 나올것만 같은 컴컴한 굴속을 잠깐 들여다보고 발길을 돌렸다.   

주상절리(柱狀節理), 드라이버겸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해도 무슨 소린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더니, 백문이 불여일견, 눈앞에 펼쳐지는 형용할 수 없는
자연의 신비에 그만 와아 탄성을 지른다.
아득한 옛날 지각변동으로 인해 이루어진 육모꼴의 검은 돌기둥들, 톱으로
잘라놓은 듯한 바닥으로 새하얀 파도가 슬쩍 올랐다 사라진다. 장관이었다.

제주 미니미니랜드에서 뜻하지 않은 세계일주여행을 한다.
1만5천평 부지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건축물을 미니어쳐로 세워놓았는데, 정교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한 눈에 어느나라 무슨 건축물인지 알 수 있게 제작되어 사진이나 TV에서
보다는 훨씬 실감이 났다. 친구들과 기념촬영. 모두 젊고 예쁘다.

남제주군 삼달리에 위치한 종합휴양관광지 일출랜드는 천연용암동굴인 미천굴을
중심으로 한 휴양관광지. 수십만개의 돌로 쌓은 미천굴 입구는 그럴듯했지만
가파른 층계를 내려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일찌감치 단념하고 잘 가꿔놓은 산책로를
거닐었다. 도중에 휴식처에서 한 친구가 권하는 어묵꼬치를 맛보기도 하면서.... 

드라마 올인(All in)의 촬영지 섭지코지에 오르는 길은 젊은이들로 꽉 메워있었다.
멀리 보이는 성당과 등대, 절벽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 오르막길 중턱에 세워진
입간판에서 사진을 찍는데 뒤에서 영어비스름한 소리가 들리고 친구가 날 잡아끈다.
신혼부부인듯 싶은 한쌍의 젊은이가 자동셔터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데 내가
걸리적거리는 모양,
‘아, 미안해요’ 하면서 비켰더니, ‘어머 한국분이셨군요, 죄송합니다’
얼마나 일본인 중국인이 많이 이곳을 찾으면 나까지 외국인으로 착각할까,
속으로 피식 웃는다.
결국 다리에 자신있는 두 친구만 끝까지 올라가고 나는 도중하차, 그래도 아쉬울 것은
없었다.

밤8시40분 비행기로 돌아오게 되어있어 저녁은 동복해녀마을에서 전복죽을 먹기로 했다.
해녀마을이라고 해도 해녀들의 잠수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아니고, 바닷가의 커다란
간이식당에서 싱싱한 전복을 골라 죽을 끓여달래 먹는 그런 곳이었다. 준비하는 동안
저무는 바닷가를 마지막으로 걸어본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창에 기우는 저녁해가 유난히도 붉게 보였다. 억새풀과 먼나무를
만끽한, 가슴 뿌듯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