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紀行文]

아시노코에 걸린 후지산

yoohyun 2004. 5. 31. 17:39
    

 아침 8시,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coin locker에 넣은 후 하코네(箱根)로 가기 위해
신쥬쿠역으로 향하는데, 쏟아지는 출근인파에 가도오도 못하고 한동안 지하도 모퉁이에
묶여 있어야 했다.

아침식사용으로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 들고, 오다와라(小田原)행 전차에 올랐다.
자리를 잡고 둘러보니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병아리 같은 유치원 꼬마들과
젊은 엄마들이 꾸역꾸역 타는 것이다.
이 전차는 에노시마(江の島)행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차가 출발한 후, 분초를 다투는
일본의 교통 시스템을 저주하면서 어쨌던 갈아탈 수 있는데 까지 가기로 맘먹었다.
오오후나(大船)에서 내려 JR선 표를 새로 구입(덤벙댄 벌로 알고 감수할 수밖에),
홈을 바꿔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벤치에 앉아 아침식사를 한다.

하코네 후리티켓을 구입했기 때문에 차를 바꿔 탈 때마다 표를 사는 수고도 덜고,
남보다 한발 앞서 타니까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어 좋다.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등산철도도 재미있었지만 소운잔(早雲山)까지의 케이블카는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허리를 누비며 올라가 그야말로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로프웨이를 타고 오-와꾸다니(大湧谷)까지 가는 것.
8명 정원의 작은 상자에 올라 45도 경사로 산 정상까지 오르는데, 까마득한 산기슭을
내려다보려니까 고소공포증이 발동, 오금이 저리면서 눈앞이 팽 돈다. 

      하얀 증기를 내뿜고 있는 분화구를 멀리 바라보면서,
거목이 울창한 산 속의 별장들을 바라보면서, 난 소녀로 되돌아가 환상의 나래를 편다.
오-와꾸다니에서 점심으로 뎀부라우동을 먹은 후 다시 로프웨이를 타고
호수 기슭으로 내려갔다.

유람선으로 모토하꼬네(元箱根)까지 가는 30분 동안,
자연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아시노코에 심취한다.
선착장 바로 앞에 있는 成川美術館은 작으마했지만 근대 일본화가들의 그림이 볼만했고,
꽃으로 뒤덮인 고즈넉한 뜰은 호수의 다른 표정을 맛보게 해준다.

하코네 게스트하우스는 아주 조그만 민박호텔. 택시기사가 모르니 이야기는 끝난 셈.  
어찌되었건 나이 지긋한 主人이 웃으며 반겨 주었다.
저녁을 사먹기 위해 다시 호숫가로 나오면서 神社도 돌아보고 호숫가로 난 숲길도 거닐었다.
세상에, 아직 여섯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거리는 황량하기 이를데 없고, 식당들은 이미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한참을 더듬은 끝에 [알라딘]이란 세련된 레스토랑을 찾아냈다. fire-
place와 피아노가 있는 아늑한 홀에 한 쌍의 연인이 촛불을 마주하고 있었다.
우린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 때 호수 저 넘어 노을빛을 받으며 뚜렷이 나타난 후지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아, 자연의 신비로움, 거룩함, 황홀함이여! 난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했다.

아침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내려갔더니 웬 서양사람들?
커다란 식탁에 독일인 부부와 영국인 청년, 벨기에 할머니, 이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장면처럼....
서로 일본 곳곳을 돌아본 이야기를 나누면서 화기애애한 가운데 아침을 드는데,
나의 짧은 영어로는 감히 끼여들 자신이 없어 그저 미소를 띤 채 먹기만 했다.

버스로 유모토(湯本)역까지 가는 동안 구불구불 산길을 즐긴다.
이번 하코네 여행은 날씨까지 따라 줘 그야말로 완벽한 나들이다.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갑빠천국'이라는 노천온천이 있었다.
시간이 이른 탓인가 할머니 딱 한분이 동그마니 물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우린 가벼운 목례를 하고 반대편 멀찌감치에 자리를 잡는다.
적당한 온도에 몸을 담그고 얼굴만 밖으로 내놓고 있으면, 산을 타고 내려온 실바람이
뺨을 살짝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시간이 이대로 한 시간만 멈췄으면 좋겠다.
눈을 감고 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