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紀行文]

노녀들의 추억여행 (秋田)

yoohyun 2003. 10. 10. 13:51
교정을 떠난지 어언 반세기, 고희의 백발 성성한 노녀 마흔여섯이 인천국제공항에
아침 일찍부터 모여들기 시작했다. 멀리 미주에서 날아 온 다섯 친구들과의 반가운 해후가
끝난 후우리는 2박3일의 일본온천여행을 위해 아키다(秋田)행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다....

이번 여행은 졸업 50주년 기념에 고희 기념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어,
관광은 뒷전이고 서로가 살아 온 세월 가운데 가장 눈부시던 젊은날들을 가슴
밑바닥에서 끄집어내어 확인하느라 바빠, 이렇다 할 볼거리도 없는 아키타가 그다지
문제시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가(男鹿)지방의 풍습으로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는 [나마하게]를 전승관에서
맛보았고, 오가반도 북부의 최첨단이라는 뉴도자키(入道崎)까지 버스로 달려,
지는 해를 안고 일렁이는 동해바다를 바라보면서 북위 40도선을 따라 걸어보기도 했다.
[눈물 흘리는 마리아상] 앞에서 무릎꿇고 기도하는 친구들을 헤집고 가까이 가
정말 눈물자욱이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기도 하고,
에메랄드빛이 환상적인 타자와호(田澤湖)를 배경으로 기념촬영도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오랜 전통의 타마가와(玉川) 유황온천 체험욕(體驗浴).
일본에는 널린 게 온천이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피부로 그 효능을 느낄 수 있었다.
온천물이 찰랑거리는 칸막이 한켠 바닥에 타월을 덮고 반듯이 누우니 그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낯선 곳에 가면 무엇보다 먼저 그 고장 먹거리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찰떡을 꼬챙이에 끼어 구운 키리탐포, 쌀을 섞어 만든 이나니와(稻庭)우동,
우리의 다식과 비슷한 모로코시, 거무스름한 훈제 다꾸앙 등등 소박한 향토음식은
일본 특유의 고향맛이리라.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쌀을 생산한다는 곳, 그 쌀로 빚은 사케(日本酒)가
저녁식사에 나왔다. 술을 좋아하는  곁의 친구에게 따라주고 난 입만 대어 보지만
원래 술을 모르는 사람이니 그저 분위기에 취할 뿐 얼마나 맛이 좋은지 알 턱이 없다.      

둘째날의 고희파티도 시끌벅적 가가대소. 게임을 통해 회장이 준비한 선물을 골고루
받아들고, 나이는 어디다 내팽개쳤는지 아이들처럼 웃고 노래하고...
아무튼 옆방에서 염탐을 하러 올 정도로 떠들썩했다.
막판의 댄스경연에는 모두 흥겹게 몸을 흔들어댔는데, 난생처음 춤이라는 걸 춰본다는
친구도 그럴듯하게 잘도 흔든다.
그러면서 우린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서로 재확인했다....

2박3일이라는 짧은 여정이 아쉽기는 했어도 세상 온갖 시름 잊은 채 타임캡슐을 타고
1950년대로 날아갔다 온 이 보배로운 추억을 난 눈을 감는 날까지 가슴 깊이
고이 간직하리라.
                                                                                              (2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