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雜文]

장외인간

yoohyun 2006. 1. 27. 09:29

팔이 안으로만 굽는다 하여
어찌 등 뒤에 있는 그대를 껴안을 수 없으랴
내 한 몸 돌아서면 충분한 것을

李外秀의 ‘장외인간’이란 소설을 매일 소리내어 몇페이지씩 읽고 있습니다.
왜 눈으로 읽지 않고 소리를 내느냐구요? 물론 나중에는 눈으로 읽지요.
처음 서너장을 내 나름의 치매예방으로 국어교과서 읽듯 소리내어 읽고,
목이 갈라지기 시작하면 눈으로 읽는데, 내용이 재미있어서 요즘 나답지 않게
누워서 읽어도 전혀 졸지 않는다구요.  
1946년생 환갑노인이 어찌 그리 젊은 감각으로 글을 잘 쓰는지...
소설의 주인공이 춘천에서 닭갈비집을 하는 시인인데, 상권 끝부분에
시가 나오기에 여기 옮겨놓습니다.
혹시 이 소설 읽고싶으신 분 제게 손 드시면 기꺼이 빌려드릴게요.

독작(獨酌)
그대가 떠나고
겨울은 깊어
도시는 폐항처럼
문을 닫았네
남의 아픔까지
내 아픔으로 울던 시대는
끝났네
함박눈 속에서
허망한 낱말들 펄럭거리며
바다로 떠나는 포장마차
밀감빛 등불에
한잔술에
늑골이 젖어
울먹이는 목소리로
암송하던 시들도
이제는 죽었네
과거로 돌아가는 통로는
폐쇄되고
아침마다 조간신문에 싸여
목이 잘리운 시체로
배달되는 사랑
믿을 수가 없어서
오늘도 나는
독약인 줄 알면서
홀로 술을 마셨네



그림은 이외수님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