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雜文]

비를 몰고 다니던 사람

yoohyun 2003. 9. 4. 12:42

 

그 사람은 늘 비를 몰고 다녔습니다.
출장을 가도, 여행을 가도, 고향 가는 길에도 항상 비가 따랐습니다.

그가 묻힌 곳을 찾아가는 날,
떠날 때는 꾸물거리기만 했을 뿐 비 올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진주 비행장에 내리니 비가 철철 내립니다.
오후에 그를 찾아가려던 계획을 할 수 없이 다음날 오전으로 미루고
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휴가철이 지나 썰렁해진 동양의 나폴리라는 곳.... 만감이 교차합니다.

새벽에 혼자 바닷바람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뽀얀 안개에 한치앞이 안보이더군요.
잘 다듬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철책너머로 가만가만 들락거리는 바닷물을 봅니다.
뿌우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가늠할 수 없는 형체가 어렴풋이 눈앞으로 스쳐갑니다.  
이런 새벽바다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어서 그저 신비스럽기만 하더군요.

어제 미친듯이 내린 비로 깨끗이 목욕하고 단장한 선산이었지만,
덜 마른 오솔길이 어찌나 미끄럽던지 한발짝만 헛디뎌도 그대로 진흙구덩이에
자빠질 것 같아 기다싶이 올라갔습니다.

거목 가지 사이로 빗살처럼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면서 그는 잠들어있었습니다.
난 그 사람에게 늦게 찾은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들과 영원히 함께 하는 그림을 내 눈으로 확인했으니까요.

아침내내 쨍쨍하던 해가 공항으로 향하는 사이에 구름속으로 숨어들더니
비행기에 오르자 작은 유리창으로 빗물이 눈물처럼 줄줄 흘러내리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