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인생의 묘미 <笑いのモツ煮こみ 중에서> - 東海林さだお著
yoohyun
2007. 5. 11. 16:39
인생을 살면서 득을 보거나 큰돈을 버는 일은 거의 없다.
성실하게 일하고 일한만큼의 보수가 따르면 다행이고, 잘못하면 일한만큼의
보수마저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복권에 당첨됐다, 돈뭉치를 주웠다, 증권으로 떼돈을 벌었다, 유산이 굴러들어왔다
등의 이야기는 곧잘 듣지만 이건 모두 남의 이야기이다.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데, 나에게 한해서만은
왠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손해를 보는 일은 많다. 허다하다.
교통카드나 우산을 잃어버리는 따위의 자잘한 손해에다
그 때 그 주식을 팔았으면, 그 아파트를 그 때 샀으면, 하는 가공 손해까지 합치면
일년 내내 손해만 보고 산다.
야반도주를 하지않으면 안될 정도의 큰 손해야 없었지만 소규모 손실은 다반사이이다.
그래도 다행은 우리들에게 있어 대박과는 인연이 멀지만 파산과도 무연이라는 점이다.
주식 한 가지만 봐도 대체로 대박이 나는 사람은 큰 손해도 입고 있지 않은가.
큰 손해를 보지 않는 다행, 이것이야말로 일종의 ‘이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기회에 이득의 규모를 아주 작게 잡아보자. 그러면 인생에는 의외로 작은 이득이
널려있음 깨달을 것이다.
· 작은 행복 그 하나
전철 안, 정류장이 가까와지면 그 역에서 내리는 승객들이 이동을 개시한다.
조금이라도 홈의 계단에 가까운 문 쪽으로 가고자 한다.
‘필시 이 근처가 계단이지’
겨냥을 한 뒤, 이 차량의 이 문이 정확히 계단 중앙일 것이라고 점찍은 곳의
문 앞에 선다.
개중에는 여기다! 하고 겨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만있자, 여기가 아니지,
생각을 바꾸고 앞쪽 문으로 이동하는 사람도 있다.
이윽고 전철이 홈에 정차한다.
겨냥이 빗나가지 않고, 한치의 어긋남 없이 층계 바로 앞에 차가 멈춘다.
한걸음의 여분도 없이 코앞이 바로 계단인 것이다.
이 때의 기쁨을 무엇에 비하리.
첫발을 홈에 내디딜 때 온몽이 떨리는 듯한 환희!
전 승객의 선두를 가르고 홈의 층계를 내려갈 때의 짜릿한 황홀감.
기쁜 나머지 나는듯이 층계를 뛰어내리는 사람도 있다.
이 때의 선두는 왠지 기쁘다.
전 승객을 뒤에 거느린 듯한 우월감.... 맞다, 그건 운동회에서 일등상을 탔을 때의
기쁨과 흡사하다.
이야말로 작은 행복, 아니 인생의 커다란 행복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반대로 이 겨냥이 빗나갔을 때는 참담하다. (틀림없이 이 문이다) 하고 겨냥했던 것이,
몇 미터나 착오가 생겼을 때의 낙담은 크다.
단 3미터의 빗나감도 분하다.
그 3미터를 걸으면서 속상하고, 한심하고, 자포자기까지 하게 된다.
더군다나 여기! 하고 겨냥한 문이 오른쪽과 왼쪽 층계의 한가운데일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모든 게 싫어지고, 내일의 희망까지 잃고 만다.
· 작은 행복 그 둘
매달 25일, 은행의 자동지급기 앞에는 긴 행렬이 생긴다.
한 대 앞에 열명쯤은 줄을 선다.
월급날은 현금인출뿐만 아니라 송금, 통장정리, 이체 등을 하기 때문에 좀처럼
행렬이 해소되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지급기에 ‘정지’ 표시가 자꾸 생긴다.
열명 행렬의 맨 뒤에 서서 한숨을 쉬면서 짜증스럽게 시계를 들여다본다.
이럴 때는 행렬 앞 쪽 사람 모두가 바보 머저리에 굼벵이로 보인다.
한사람 한사람의 뒷모습이 밉살스럽다.
(이제 여덟명 남았나) 중얼거리는데, 옆 지급기에 붙어있던 ‘정지’ 표시가 갑자기 없어진다.
순간,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잽싼 행동으로 그 기계로 달려가,
갑자기 첫번째가 되었을 때의 기쁨!
꼴들 좋다! 어때, 내가 누군데! 앗싸! 갖가지 우월감이 뒤섞이면서 너무 기뻐
기계를 조작하는 손이 떨린다.
꼴찌가 갑자기 일등이 된 것이다.
게다가 아무 노력도 수단도 없이 돌연 첫째가 되었다는 점에 커다란 의의가 있다.
아까 취한 순간적인 결단, 재빠른 행동에도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다.
옆 줄의, 아직도 줄어들지 않는 곳에서 선망의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사람들
시선이 기쁘다.
인생의 행복을 차분하게 맛보는 한 때이다.
그 대신, 긴 행렬을 끈질기게 기다려 마침내 앞으로 한명, 이제 한명만 끝나면
내 차례다, 바로 그 순간 ‘정지’ 표시가 뜰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앞 사람이 아직 기계에 손도 대지 않았는데, (저 놈이 실수했어) 라고 생각한다.
실수한 놈 까지 합쳐 옆줄로 이동할 때의 비참함....
옆줄 사람들의 ‘꼴 좋다’ 하는 시선이 따갑다.
· 작은 행복 그 셋
하릴없이 오전 중에 찻집에 들어간다.
커피를 주문한다.
옆에 있는 신문꽂이에서 스포츠신문을 꺼내 펼쳐들고 있는데 커피가 도착한다.
신문에서 눈을 떼고 테이불 위를 보니 커피와 토스트 그리고 삶은 계란이 놓여있다.
(응? 나 이런 거 시키지 않았는데)
순간 화가 나서 멀어져가는 언니를 부르려다 멈칫한다.
‘열한시까지 모닝서비스’ 라고 써 붙인 종이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아, 그렇구나) 하고 굳어진 안면 근육을 푼다.
이 때의 안도감, 전신에 퍼지는 행복감, 평화를 되찾음으로서 얻은 안정감이란
참으로 근사하다.
역시 평화스러운 편이 좋다.
(이 세상에는 그렇게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니까) 생각하면서 커피잔을 젓는다.
배가 불러 그다지 토스트나 삶은 계란이 당기지 않건만, 삶은 계란에 정성껏
소금을 뿌려 둘로 나눈 뒤 맛있게 먹는다.
그다지 먹고 싶지 않은데도 ‘횡재했으니 먹어보자’ 는 점에 뭐라 말할 수 없는
깊은 맛을 느낀다.
맛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횡재한 별맛’이라고나 할까....
성실하게 일하고 일한만큼의 보수가 따르면 다행이고, 잘못하면 일한만큼의
보수마저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복권에 당첨됐다, 돈뭉치를 주웠다, 증권으로 떼돈을 벌었다, 유산이 굴러들어왔다
등의 이야기는 곧잘 듣지만 이건 모두 남의 이야기이다.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데, 나에게 한해서만은
왠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손해를 보는 일은 많다. 허다하다.
교통카드나 우산을 잃어버리는 따위의 자잘한 손해에다
그 때 그 주식을 팔았으면, 그 아파트를 그 때 샀으면, 하는 가공 손해까지 합치면
일년 내내 손해만 보고 산다.
야반도주를 하지않으면 안될 정도의 큰 손해야 없었지만 소규모 손실은 다반사이이다.
그래도 다행은 우리들에게 있어 대박과는 인연이 멀지만 파산과도 무연이라는 점이다.
주식 한 가지만 봐도 대체로 대박이 나는 사람은 큰 손해도 입고 있지 않은가.
큰 손해를 보지 않는 다행, 이것이야말로 일종의 ‘이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기회에 이득의 규모를 아주 작게 잡아보자. 그러면 인생에는 의외로 작은 이득이
널려있음 깨달을 것이다.
· 작은 행복 그 하나
전철 안, 정류장이 가까와지면 그 역에서 내리는 승객들이 이동을 개시한다.
조금이라도 홈의 계단에 가까운 문 쪽으로 가고자 한다.
‘필시 이 근처가 계단이지’
겨냥을 한 뒤, 이 차량의 이 문이 정확히 계단 중앙일 것이라고 점찍은 곳의
문 앞에 선다.
개중에는 여기다! 하고 겨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만있자, 여기가 아니지,
생각을 바꾸고 앞쪽 문으로 이동하는 사람도 있다.
이윽고 전철이 홈에 정차한다.
겨냥이 빗나가지 않고, 한치의 어긋남 없이 층계 바로 앞에 차가 멈춘다.
한걸음의 여분도 없이 코앞이 바로 계단인 것이다.
이 때의 기쁨을 무엇에 비하리.
첫발을 홈에 내디딜 때 온몽이 떨리는 듯한 환희!
전 승객의 선두를 가르고 홈의 층계를 내려갈 때의 짜릿한 황홀감.
기쁜 나머지 나는듯이 층계를 뛰어내리는 사람도 있다.
이 때의 선두는 왠지 기쁘다.
전 승객을 뒤에 거느린 듯한 우월감.... 맞다, 그건 운동회에서 일등상을 탔을 때의
기쁨과 흡사하다.
이야말로 작은 행복, 아니 인생의 커다란 행복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반대로 이 겨냥이 빗나갔을 때는 참담하다. (틀림없이 이 문이다) 하고 겨냥했던 것이,
몇 미터나 착오가 생겼을 때의 낙담은 크다.
단 3미터의 빗나감도 분하다.
그 3미터를 걸으면서 속상하고, 한심하고, 자포자기까지 하게 된다.
더군다나 여기! 하고 겨냥한 문이 오른쪽과 왼쪽 층계의 한가운데일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모든 게 싫어지고, 내일의 희망까지 잃고 만다.
· 작은 행복 그 둘
매달 25일, 은행의 자동지급기 앞에는 긴 행렬이 생긴다.
한 대 앞에 열명쯤은 줄을 선다.
월급날은 현금인출뿐만 아니라 송금, 통장정리, 이체 등을 하기 때문에 좀처럼
행렬이 해소되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지급기에 ‘정지’ 표시가 자꾸 생긴다.
열명 행렬의 맨 뒤에 서서 한숨을 쉬면서 짜증스럽게 시계를 들여다본다.
이럴 때는 행렬 앞 쪽 사람 모두가 바보 머저리에 굼벵이로 보인다.
한사람 한사람의 뒷모습이 밉살스럽다.
(이제 여덟명 남았나) 중얼거리는데, 옆 지급기에 붙어있던 ‘정지’ 표시가 갑자기 없어진다.
순간,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잽싼 행동으로 그 기계로 달려가,
갑자기 첫번째가 되었을 때의 기쁨!
꼴들 좋다! 어때, 내가 누군데! 앗싸! 갖가지 우월감이 뒤섞이면서 너무 기뻐
기계를 조작하는 손이 떨린다.
꼴찌가 갑자기 일등이 된 것이다.
게다가 아무 노력도 수단도 없이 돌연 첫째가 되었다는 점에 커다란 의의가 있다.
아까 취한 순간적인 결단, 재빠른 행동에도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다.
옆 줄의, 아직도 줄어들지 않는 곳에서 선망의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사람들
시선이 기쁘다.
인생의 행복을 차분하게 맛보는 한 때이다.
그 대신, 긴 행렬을 끈질기게 기다려 마침내 앞으로 한명, 이제 한명만 끝나면
내 차례다, 바로 그 순간 ‘정지’ 표시가 뜰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앞 사람이 아직 기계에 손도 대지 않았는데, (저 놈이 실수했어) 라고 생각한다.
실수한 놈 까지 합쳐 옆줄로 이동할 때의 비참함....
옆줄 사람들의 ‘꼴 좋다’ 하는 시선이 따갑다.
· 작은 행복 그 셋
하릴없이 오전 중에 찻집에 들어간다.
커피를 주문한다.
옆에 있는 신문꽂이에서 스포츠신문을 꺼내 펼쳐들고 있는데 커피가 도착한다.
신문에서 눈을 떼고 테이불 위를 보니 커피와 토스트 그리고 삶은 계란이 놓여있다.
(응? 나 이런 거 시키지 않았는데)
순간 화가 나서 멀어져가는 언니를 부르려다 멈칫한다.
‘열한시까지 모닝서비스’ 라고 써 붙인 종이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아, 그렇구나) 하고 굳어진 안면 근육을 푼다.
이 때의 안도감, 전신에 퍼지는 행복감, 평화를 되찾음으로서 얻은 안정감이란
참으로 근사하다.
역시 평화스러운 편이 좋다.
(이 세상에는 그렇게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니까) 생각하면서 커피잔을 젓는다.
배가 불러 그다지 토스트나 삶은 계란이 당기지 않건만, 삶은 계란에 정성껏
소금을 뿌려 둘로 나눈 뒤 맛있게 먹는다.
그다지 먹고 싶지 않은데도 ‘횡재했으니 먹어보자’ 는 점에 뭐라 말할 수 없는
깊은 맛을 느낀다.
맛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횡재한 별맛’이라고나 할까....